“한국을 적(敵)으로 보는 조치다. 곧바로 철회해야 한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81·사진) 도쿄대 명예교수는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해 “한국 반도체 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와다 교수를 비롯한 일본 학자,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 75명은 25일 인터넷 사이트를 열고 ‘한국은 적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올렸다. 이들은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다음 달 15일까지 서명을 받는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후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움직임이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와다 교수는 “지난해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직후 일본 지식인들이 활발하게 의논했다. 하지만 대안에 대해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해 결국 성명을 내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번 수출 규제 강화 건에 대해선 ‘철회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한일 갈등을 ‘외교의 장에서 협의하자’고 제안했지만 일본 측은 응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와다 교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올해 시정연설 때부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한국과 이야기할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조로 하고, 서로 뗄 수 없는 이웃 국가다. 아베 총리가 한국을 적으로 보는 자세를 바꿔 외교적 대화에 나서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함께 ‘올림픽 정신’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와다 교수는 “남한과 북한, 북한과 미국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대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올림픽 정신은 ‘평화’를 강조한다”고 설명한 뒤 “내년에는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데 주최국 수장인 아베 총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를 적대시하고 있다. 올림픽 정신과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중재위 개최를 요구하며 한국을 압박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이 2011년 위안부 문제로 중재위 개최를 요구했을 때에는 일본이 응하지 않았다”며 일본의 이중적 태도를 지적했다.
와다 교수는 또 “징용 관련 소송은 민사소송이고 피고는 일본 기업이다. 피고 기업이 판결에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해야 하는데, 일본 정부가 관여하면서 사태가 복잡해지고 국가 대 국가 갈등으로 커졌다”고 말했다.
와다 교수 등 일본 지식인들은 이달 초부터 성명 작업을 준비했다고 한다. 참의원 선거 전에 공표하려 했는데, 실무 작업이 늦어지면서 25일 인터넷에 게재했다. 28일 오후 10시 기준으로 1627명이 서명했다.
와다 교수는 “많은 성명을 받아봤지만 이번엔 동참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일본 전국에서 동참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