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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모유

Posted August. 21, 2019 09:36,   

Updated August. 21, 201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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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한가운데를 펼치면 두 편의 시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왼쪽에는 ‘어떤 피에타’가, 오른쪽에는 ‘슬픈 모유’가 있다. 하나는 시인의 슬픔을, 다른 하나는 칠레 여성의 슬픔을 표현한 시다. ‘나’의 슬픔과 타인의 슬픔의 절묘한 배치. 나희덕 시인의 시집 ‘파일명 서정시’ 얘기다.

 왼쪽의 시 어떤 피에타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 시인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토로한다. 하필이면 딸이 태어난 날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삶과 죽음이 ‘한 개의 씨앗에서’ ‘두 개의 떡잎처럼 돋아난’ 날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태어날 때 받아 안았던 것처럼, 중년이 된 딸은 아버지의 시신을 받아 안는다. 도대체 ‘이것은 어떤 피에타인가’. 시인은 고통스럽게 묻는다.

 오른쪽의 시 슬픈 모유는 타인의 고통에 관한 시다. 더 정확히 말하면 2009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칠레 영화 ‘슬픈 모유’에 관한 시다. 스페인어 원제목은 ‘겁먹은 젖꼭지(La Teta Asustada)’이지만, 영어로 번역되면서 부드러운 어감의 슬픈 모유로 바뀌었다.

 그러나 원제목이 영화의 핵심에 훨씬 더 가깝다. 피노체트 독재정권 치하에서 정부군에 무자비한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를 은유가 아닌 날것으로 전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아이는 어머니의 젖에서 사랑을 물려받겠지만, 파우스타는 성폭행당한 어머니의 겁먹은 젖에서 겁과 미신과 트라우마를 물려받는다. 그녀가 ‘거리에 떠도는 영혼에게 잡혀갈까봐/벽 쪽으로 꼭 붙어서 걷고’ 남자의 접근을 차단하겠다고 몸속에 감자를 넣은 이유다. 그녀는 두려움이 밀려들면 어머니가 그랬듯 노래를 한다. 그게 전부다.

 시인이 자신의 슬픔과 이국 여성의 슬픔을 나란히 놓은 이유는 죽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두려움을 노래로 이겨내려는 칠레 여성에게서,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시로 이겨내려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서일지 모른다. 슬픔의 연대라고나 할까.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