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터키가 쿠르드족 거점지인 시리아 북부에서 본격적인 지상전을 시작했다. 이날 당일에만 민간인 8명을 포함해 최소 15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2011년부터 8년간 이어진 시리아 내전이 터키와 쿠르드족의 전면전이라는 새 국면을 맞았다.
○ 네 방향으로 시리아 북부 진입
터키 국방부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터키군과 친터키 성향의 시리아반군 시리아국가군(SNA)이 유프라테스강 동쪽에서 지상전을 시작했다. 공습과 포격을 통해 181개의 공격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등은 터키 군이 네 갈래로 나눠 시리아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지상군 투입에 앞서 공군은 국경 요충지인 탈아브야드, 라스알아인, 까미슐리, 아인이사, 코바니 등에 집중 포격을 가했다고도 덧붙였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정확한 군 규모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터키 측은 쿠르드족 공격이 지역 안정 및 평화를 위해서라며 ‘평화의 샘’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작전명까지 붙였다. 국방부는 “이번 작전은 유엔헌장 51조에서 규정한 자위권, 테러 관련 전투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결의안의 틀에서 이뤄지고 있다. 시리아의 영토 보전을 존중할 것”이라며 “공격 목표는 테러리스트와 이들의 무기, 차량, 장비 등이며 민간인, 역사적 건물, 사회기반시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도 주장했다.
터키의 주장과 달리 인권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공격으로 인한 사상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터키-시리아 국경 지대에는 약 50만 명의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날 공격으로 쿠르드족이 주축이 된 시리아민주군(SDF)이 관리해 온 이슬람국가(IS) 가담자 수용시설도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IS 구성원이 대거 탈출할 가능성도 있어 가뜩이나 불안한 치안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 국제 사회 우려 불구 공세 지속
10일 유엔 안보리는 이번 사태에 관한 긴급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모든 군사작전은 유엔 헌장과 국제 인도주의 법률을 존중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터키가 자제할 것으로 믿는다. 더 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할 행동을 피하라”며 “11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집트 등도 일제히 공격 중단을 요구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자국 터키 대사를 초치했다. 러시아, 이란 등도 터키의 중동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터키는 국제 사회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사작전을 강화할 의사를 분명히 했다.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족이 독립을 추진하면 8200만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자국 쿠르드족까지 독립을 추진할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쿠르드노동자당(PKK)은 40여 년 전부터 분리 독립을 주창했고 터키 정부의 대대적 탄압을 받아왔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 북부 쿠르드 민병대의 주축인 인민수비대(YPG)는 PPK의 하부 조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장기 집권 피로감과 경제난으로 지지율이 예전 같지 않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지율 상승을 위해서라도 강경 태도를 쉽사리 접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터키가 360만 명에 달하는 자국 내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는 음모론도 제기하고 있다. 쿠르드족을 쫓아낸 후 이들의 거주지에 일종의 난민 수용소를 만들어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의도라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3일 전과 마찬가지로 “쿠르드족에 피해가 생기면 터키 경제를 쓸어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중단 같은 실질적 조치를 내놓지 않아 ‘생색내기’란 비판이 거세다.
이세형 turtle@donga.com · 박용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