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잃어버리는 건 한순간이다. 19세기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는 자신의 훼손된 명예를 되찾기 위해 유명 평론가를 고소했다. 도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그림은 화가와 평론가 사이에 벌어진 가장 유명한 재판의 주인공이다. 미국 출신으로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에서 활동했던 휘슬러는 1877년 런던의 한 갤러리 전시에 그림 한 점을 출품했다. 최근 몇 년간 매달렸던 ‘야상곡’ 연작 중 하나였다. 얼핏 보면 추상화 같지만, 사실은 런던의 유명 유원지였던 크리몬 정원의 불꽃놀이 장면을 묘사한 풍경화다. 전경에는 구경꾼들이 유령처럼 그려져 있고, 안개 낀 밤하늘 위로 쏘아진 폭죽은 노란 불꽃이 되어 강물로 떨어지고 있다. 그는 물감을 흩뿌리듯 빠른 필치로 점을 찍어 표현했다. 평론가 존 러스킨은 미완성 작품을 출품한 뻔뻔한 화가라며 “물감 한 통을 대중의 얼굴에 던져버렸다”고 휘슬러를 맹비난했다. 유명 평론가가 혹평한 그림을 살 고객은 아무도 없었다. 휘슬러는 4년 전에도 자신의 작품을 ‘쓰레기’라고 했던 평론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법정에서 러스킨의 변호사는 “이틀 만에 그린 그림에 200기니(옛 영국의 화폐단위)나 받는 것이 공정한 것인가”라고 물으며 그를 비도덕적인 화가로 몰아붙였고, 휘슬러는 “일생에 거쳐 깨달은 지식에 대한 가치에 매긴 값”이라고 응수했다.
결국 휘슬러는 논쟁에서도 재판에서도 이겼다. 하지만 받은 손해배상액은 단돈 1파딩(옛 영국의 화폐단위·4분의 1페니)이었고, 막대한 재판 비용은 그를 파산시켰다. 경제 논리로만 보면 완전 손해지만 그처럼 모든 것을 다 걸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바로 자존심이고 명예다. 휘슬러는 1890년 이 소송 과정을 기록한 ‘적을 만드는 우아한 미술’이란 책을 펴내 두고두고 러스킨에게 복수했다.
김성경기자 tjdrud030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