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여성 경무관이 독립유공자 황현숙 선생(1902∼1964·사진)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황 선생은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와 함께 투옥됐던 것으로 알려진 독립유공자다. 71년 전 동아일보에 실린 인사 발령 기사가 황 선생의 경무관 이력을 밝히는 단초가 됐다.
경찰청은 최근 경찰 내 숨은 독립유공자의 기록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황 선생이 1948년 11월 10일 경무관으로 특채돼 내무부 치안국(현 경찰청) 여자경찰과장으로 임명되면서 최초의 여자 경무관으로 재직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종전엔 2004년 1월 경무관으로 승진한 김인옥 전 제주지방경찰청장(67)이 첫 여성 경무관으로 알려져 있었다.
황 선생이 임용됐을 때 경무관은 이사관(치안국장)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경찰 계급이었다. 현재도 경무관은 치안총감(경찰청장)과 치안정감, 치안감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아 ‘경찰의 별’이라 불리는 계급이지만 당시엔 최고위 지휘부에 해당했다. 황 선생은 여자경찰과장을 맡아 1년여간 재직하며 여성과 청소년 사건을 전담 처리하는 전국 4개 여자경찰서를 총괄했다.
경찰청이 71년 만에 이런 사실을 밝혀낸 데엔 동아일보의 인사 기사가 한몫했다. 황 선생은 광복 후 이름을 ‘금순’에서 ‘현숙’으로 바꿨는데 경찰이 관리하는 여경 명단엔 개명 후의 이름만 기록돼 있었다.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독립유공 경찰 발굴 과정에서 황 선생을 찾아내지 못했던 이유다.
충남지방경찰청은 분석 대상을 넓혀 국가보훈처 공훈 사료를 뒤지던 중 황 선생의 개명 전 이름이 병기된 공적조서를 찾아냈고, 이를 토대로 문헌 조사를 벌여 1948년 11월 16일자 동아일보 1면에 게재된 ‘정부 인사 발령’ 기사에서 그가 경무관으로 임명됐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경찰 내 사령원부와 대조해 그가 최초의 여성 경무관이었다는 사실을 확정한 것이다. 이영철 경찰청 임시정부태스크포스(TF)팀장은 “광복 전후로 많은 자료가 파손되거나 사라져 기록 확인이 어려웠는데 공신력 있는 신문의 기사가 잘 보존된 덕에 발굴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같은 달 20일 충남 천안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붙잡혀 보안법 위반죄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50년 1월 24일자 ‘부인신문’에 따르면 황 선생은 만세운동 직후 공주형무소에서 유관순 열사와 한 방에 갇혔다. 황 선생은 전북 군산 멜볼딘여학교(현 군산영광여고)에서 교원으로 재직하던 1929년에도 광주 지역 학생들의 동맹휴학 운동 배후로 지목돼 구류되자 옥중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광복 후 1945년 9월 조선여자국민당을 창당했고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범 김구 선생 등 민족 지도자들과 함께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경찰청은 지난해부터 여성 5명을 포함해 총 55명의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을 확인했고, 앞으로도 지방경찰청에서 발굴 작업을 계속할 방침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