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시리즈, 아날로그의 반격
Posted November. 01, 2019 07:30,
Updated November. 01, 2019 07:30
월드시리즈, 아날로그의 반격.
November. 01, 2019 07:30.
by 신무경기자 yes@donga.com.
워싱턴 내셔널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를 두고 ‘흙수저와 금수저의 대결’이라는 관점이 있었지만, 사실 잘못됐다. 족보(과거 성적)로 보면 워싱턴과 휴스턴 애스트로스 모두 흙수저이고, 재력(팀 연봉) 면에서는 두 팀 모두 금수저에 가깝다.
이보다 미국 언론의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평가가 더 신선하다. 워싱턴은 ‘아날로그(구식)’이고 휴스턴은 ‘디지털(혁신)’인데, 첨단 무기가 지배하는 세상을 돌도끼가 전복했다는 관점이다.
설득력이 있다. 휴스턴은 데이터 혁명으로 환골탈태한 팀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에서 일하던 제프 루노가 2013년 단장으로 취임한 뒤다. 그는 정통 스카우트를 해고하고, 데이터 분석가들로 그 자리를 채웠다. 인간보다는 데이터가 더 나은 정보를 준다고 굳게 믿었다. 초고속 카메라를 설치한 뒤 코치들을 내보내고, 산하 마이너리그 팀을 줄였다. 선수를 ‘평가’하지 않고, 기량을 ‘측정’했다. 최근 3년 연속 100승 이상 거뒀고, 3년간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등 명문 팀들도 벤치마킹하고 나섰다.
워싱턴은 달랐다. 휴스턴에 흔한 하버드대, 예일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다. 그 대신 환갑이 넘은 스카우트와 참모진이 10명이나 된다. “우리는 경기장에 모여 앉아 시가를 한 대 피우고, 그러면서 뭔가를 끄집어낸다”고 말한다. 1960년대식 버전이다. 마이너리그 선수 출신 마이크 리조 단장 등은 “선수는 인간이다. 그래서 선수를 평가할 때 열정 등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경기력만 측정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결국 워싱턴이 이겼다. 선수들의 열정은 대단했고, 특히 마지막 7차전은 휴스턴을 압도했다. 그 열정을 ‘측정’하지 못한 휴스턴은 막판 허둥댔다. 정규시즌 최다승 팀(107승)이 막차 타고 가을 무대에 오른 팀(93승)에 그렇게 무너졌다. 한 편의 영화처럼 스토리텔링이 극적이고, 선악 구분도 명확하다. 현실이 영화 뺨칠 정도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확인해 보니,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 워싱턴도 데이터 분석 팀이 그들만의 정보를 생산하고 있었다. 휴스턴 루노 단장도 “우리도 눈과 감(感)으로 판단하는 유능한 인재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왜 미국 언론은 두 팀을 극단적으로 구분했을까. 휴스턴식 혁신에 대한 반발 때문으로 보인다. 혁신은 파괴를 동반하지만, 휴스턴은 130년 동안 통용돼온 메이저리그의 믿음(문법)을 대부분 부정해 과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간적인 부분은 웬만하면 제거했고, 사회적으로 공유된 가치도 외면했다. 오직 데이터만이 옳은 길을 안내한다고 믿었다. 찬사도 따랐지만, ‘양심 없는 구단’이라는 낙인도 찍혔다.
그러다 월드시리즈 기간에 사달이 났다. 팀의 핵심 관계자가 소속 선수의 가정폭력 이력을 두둔해 문제가 됐다. 가정폭력은 메이저리그가 무관용으로 대응하는 사안이다. 구단주는 여론에 밀려서야 사과하고 관계자를 해임했다. 데이터만 신봉하는 휴스턴의 조직문화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휴스턴의 혁신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회의론도 커졌다. 그래서 워싱턴의 인간 중심적 운영이 과장돼서 호출됐을 것이다. 휴스턴식 혁신은 이제 숨을 고를 가능성이 높다.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외치고 있는 우리 사회. 혁신의 속도가 더딘 데에는, 기술 문제도 있지만 혁신에 따른 사회적 갈등도 자리를 잡고 있다. 기술 발전이 디지털 시대 경쟁 우위를 지키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인간적 요인과 사회적 호응도 중요하다. 월드시리즈를 보면서, 혁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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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내셔널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를 두고 ‘흙수저와 금수저의 대결’이라는 관점이 있었지만, 사실 잘못됐다. 족보(과거 성적)로 보면 워싱턴과 휴스턴 애스트로스 모두 흙수저이고, 재력(팀 연봉) 면에서는 두 팀 모두 금수저에 가깝다.
이보다 미국 언론의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평가가 더 신선하다. 워싱턴은 ‘아날로그(구식)’이고 휴스턴은 ‘디지털(혁신)’인데, 첨단 무기가 지배하는 세상을 돌도끼가 전복했다는 관점이다.
설득력이 있다. 휴스턴은 데이터 혁명으로 환골탈태한 팀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에서 일하던 제프 루노가 2013년 단장으로 취임한 뒤다. 그는 정통 스카우트를 해고하고, 데이터 분석가들로 그 자리를 채웠다. 인간보다는 데이터가 더 나은 정보를 준다고 굳게 믿었다. 초고속 카메라를 설치한 뒤 코치들을 내보내고, 산하 마이너리그 팀을 줄였다. 선수를 ‘평가’하지 않고, 기량을 ‘측정’했다. 최근 3년 연속 100승 이상 거뒀고, 3년간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등 명문 팀들도 벤치마킹하고 나섰다.
워싱턴은 달랐다. 휴스턴에 흔한 하버드대, 예일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다. 그 대신 환갑이 넘은 스카우트와 참모진이 10명이나 된다. “우리는 경기장에 모여 앉아 시가를 한 대 피우고, 그러면서 뭔가를 끄집어낸다”고 말한다. 1960년대식 버전이다. 마이너리그 선수 출신 마이크 리조 단장 등은 “선수는 인간이다. 그래서 선수를 평가할 때 열정 등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경기력만 측정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결국 워싱턴이 이겼다. 선수들의 열정은 대단했고, 특히 마지막 7차전은 휴스턴을 압도했다. 그 열정을 ‘측정’하지 못한 휴스턴은 막판 허둥댔다. 정규시즌 최다승 팀(107승)이 막차 타고 가을 무대에 오른 팀(93승)에 그렇게 무너졌다. 한 편의 영화처럼 스토리텔링이 극적이고, 선악 구분도 명확하다. 현실이 영화 뺨칠 정도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확인해 보니,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 워싱턴도 데이터 분석 팀이 그들만의 정보를 생산하고 있었다. 휴스턴 루노 단장도 “우리도 눈과 감(感)으로 판단하는 유능한 인재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왜 미국 언론은 두 팀을 극단적으로 구분했을까. 휴스턴식 혁신에 대한 반발 때문으로 보인다. 혁신은 파괴를 동반하지만, 휴스턴은 130년 동안 통용돼온 메이저리그의 믿음(문법)을 대부분 부정해 과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간적인 부분은 웬만하면 제거했고, 사회적으로 공유된 가치도 외면했다. 오직 데이터만이 옳은 길을 안내한다고 믿었다. 찬사도 따랐지만, ‘양심 없는 구단’이라는 낙인도 찍혔다.
그러다 월드시리즈 기간에 사달이 났다. 팀의 핵심 관계자가 소속 선수의 가정폭력 이력을 두둔해 문제가 됐다. 가정폭력은 메이저리그가 무관용으로 대응하는 사안이다. 구단주는 여론에 밀려서야 사과하고 관계자를 해임했다. 데이터만 신봉하는 휴스턴의 조직문화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휴스턴의 혁신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회의론도 커졌다. 그래서 워싱턴의 인간 중심적 운영이 과장돼서 호출됐을 것이다. 휴스턴식 혁신은 이제 숨을 고를 가능성이 높다.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외치고 있는 우리 사회. 혁신의 속도가 더딘 데에는, 기술 문제도 있지만 혁신에 따른 사회적 갈등도 자리를 잡고 있다. 기술 발전이 디지털 시대 경쟁 우위를 지키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인간적 요인과 사회적 호응도 중요하다. 월드시리즈를 보면서, 혁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신무경기자 y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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