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개츠비 씨가 보낸 파티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드레스 코드는 정장입니다.”
이것은 연극인가, 파티인가.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관객들은 개츠비가 주최한 미국 대저택 무도회 속 귀빈이 된다. 오직 초청받은 이에게만 허락된다는 초호화 파티. 관객들은 재즈 선율에 맞춰 소설 ‘위대한 개츠비’ 등장인물과 춤을 춘다. 배우와 4층짜리 극장 건물을 같이 돌아다니고 대화도 나눈다. 이쯤 되면 공연이라기보단 한바탕 축제에 가깝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금주법을 시행하지만, 비밀(?)스럽게 가벼운 술도 허락된다.
전통적 관극(觀劇)에 반기를 든 연극 ‘위대한 개츠비’가 다음 달 21일 서울을 찾는다. 영어 제목이 원작의 ‘The Great Gatsby’가 아니라 ‘Immersive Gatsby’인 대목은 이 연극의 지향점을 분명히 한다. 14일 서울 중구 그레뱅뮤지엄에서 만난 알렉산더 라이트 총연출(45)은 “개츠비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을 건가요?”라며 웃음 지었다.
‘위대한…’은 영국 역사상 ‘관객참여형(이머시브) 연극 가운데 가장 롱런하는 작품이다. 2015년 요크시에서 흥행에 성공한 뒤 현재 런던에서도 인기가 멈추지 않는다. 아일랜드와 벨기에, 호주 등에서 공연했으며, 한국 라이선스 공연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이다.
이 작품은 라이트가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다 우연히 탄생했다. 영문학을 전공한 뒤 연출과 PD, 극작가, 작곡가로 활동하던 그는 어느 날 술을 마시다 “지금 있는 3층짜리 펍이 곧 폐업할 것”이란 얘길 들었다. 어차피 문 닫을 곳이라면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평소 도전하기 힘든 실험극을 떠올렸다. 술과 흥겨움이 넘치는 펍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극의 메인 테마는 고전 ‘위대한 개츠비’를 택했다.
“곧 망할 가게라 건물을 공짜로 쓸 수 있었던 덕분이죠, 하하. 작업에 착수한 뒤 우리가 내린 결론은 객석에 가만히 앉아 박수만 치는 전통적인 공연 관람은 ‘진짜’ 소통하는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친구와 대화할 때 가만히 듣고만 있나요?”
‘위대한…’은 태생부터 정식 공연장에서 출발한 게 아닌 만큼, 한국에서도 4층짜리 박물관인 그레뱅뮤지엄을 택했다. 배우나 관객의 동선이 복잡해 공연장 특성에 따라 극을 전개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공연장을 옮길 때마다 극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됩니다. 서울 공연장은 4층 구조에 다양한 공간이 있어 활용도가 높아요. 통로는 원형 구조라 관객이 돌아다녀도 결국 한곳에 쉽게 모이는 특성이 있죠. 파티에 ‘딱’입니다.”
공간 구상과 활용에 도가 튼 라이트에게 진짜 난관은 따로 있었다. 한국어였다. 영어권 국가에선 소설 원작의 영어 대사를 그대로 살렸다. 그런데 한국에서 쓰는 번역 대사는 반말과 존댓말이 존재해 뉘앙스 차이가 상당했다. 그는 “개츠비가 관객에게 존댓말로 할지, 반말로 할지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며 웃었다.
라이트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공연도 관객에게 ‘정장 드레스 코드’를 권할 방침이다. 다른 나라 공연도 일부 관광객을 제외하면 90% 이상이 구두와 정장을 제대로 갖춰 입고 온단다. 그는 “관객과 배우 모두가 같은 시공간 속으로 떠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며 “집에서 옷을 갖춰 입고 나온 순간부터 관객은 이미 극의 일부가 되는 여정을 시작한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말끝을 흐리던 라이트는, 결국 한마디 덧붙였다.
“위대한 개츠비는 전통적 공연장의 권위적인 행동수칙이나 격식을 극복하려는 작품이죠. 그런데 정작 제 공연에서 드레스 코드를 요구할 줄은 몰랐네요, 하하.”
12월 21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서울 중구 그레뱅뮤지엄. 전석 7만7000원. 17세 이상.
김기윤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