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 씨(29)의 새해 목표는 ‘커피 중독’에서 벗어나기다. 출근길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점심식사 후 회사 동료들과 커피 한 잔, 잠이 몰려오는 오후 사무실에서 캡슐커피 한 잔을 습관처럼 마셨더니 언젠가부터 커피 없이는 피로를 쫓을 수 없게 됐다. 이 씨는 “커피를 끊고서 처음에는 두통이 생겼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오히려 잠을 푹 잘 수 있게 됐다. 오히려 근무시간에 집중도가 더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이는 따끈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한 계절이다. 이제 커피는 단순한 개인 기호의 차원을 넘어 소통의 문화가 된 지 오래다. 사실 커피 한 잔은 일상에 여유를 줄 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각성 효과를 가져와 학업이나 직장 생활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습관처럼 커피를 즐기다 보면 카페인에 중독돼 건강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권고하는 성인의 카페인 일일 섭취 기준량은 최대 400mg. 2018년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국내 주요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한 잔(평균 303mL)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평균 136mg인 것으로 조사됐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만 마셔도 카페인 일일 섭취 권고량을 넘기기 쉽다.
카페인은 중추신경을 자극해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또 졸음을 일으키는 아데노신의 작용을 억제하고, 신경을 자극해 일시적으로 암기력도 높여준다. 그러나 하루에 카페인을 500mg 이상 과다 섭취하게 되면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장박동이나 맥박이 증가하고 혈압이 높아지며 불안, 초조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부작용이 대표적이다. 권길영 노원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소화불량과 같은 소화기 장애나 빈뇨 증상, 이명, 손발 저림과 같은 다른 증상들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카페인 섭취는 의학적으로 ‘카페인 중독’에까지 이를 수 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진단통계편람(DSM)에 따르면 육체적, 정신적 질환이 없고 하루 카페인 섭취량이 250mg 이상인 사람이 다음 12가지 증상 중 5개 이상에 해당하면 카페인 중독이 의심된다. 기준은 △안절부절못함 △신경과민 △흥분 △불면 △안면 홍조 △소변이 자주 마려움 △소화불량 등 소화기 장애 △두서없는 사고와 언어 △근육 경련 △주의 산만 △지치지 않음 △맥박이 빨라지거나 불규칙함 등이다.
카페인 금단현상은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은 지 12∼24시간이 지나면 발생한다. 카페인을 하루 500mg 이상 섭취한 사람이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드물지만 평일 하루 1∼2잔을 꾸준히 마신 사람도 이와 같은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카페인 금단현상은 두통이 가장 흔하며 피로, 산만함, 구역질, 근육통, 우울감 등의 증상이 같이 나타날 수 있다.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이나 청소년들도 카페인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탄산음료나 초콜릿 등에 카페인이 다량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커피우유(200mL)에는 카페인 약 47mg, 캔 콜라(250mL)에는 카페인 23mg, 초콜릿 한 개(30g)에는 카페인이 16mg 들어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하루 카페인 섭취 권고량은 체중 1kg당 2.5mg 이하다. 즉 체중이 10kg인 아이의 경우 카페인을 25mg 이하로 섭취하는 게 좋다.
권 교수는 “어른보다 신진대사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몸 안에 카페인이 더 오래 남기 때문에 두통이나 불안, 신경과민의 부작용에 취약하다”며 “카페인 성분 자체가 성장을 억제하지는 않지만 다른 음식에 함유된 칼슘이나 철분의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새해 카페인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장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전문가들은 카페인 섭취를 갑자기 중단하는 것보다 1∼2주에 걸쳐 서서히 섭취량을 줄여 나가는 게 좋다고 말한다. 커피를 줄이는 과정에서 디카페인 음료를 함께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려 마시는 커피는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내리고, 티백도 짧게 우려내는 것이 좋다. 평소 식품을 구입할 때 카페인 함량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위은지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