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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2000년대

Posted February. 21, 2020 07:56,   

Updated February. 21, 202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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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대하는 중국과 북한의 행보는 사뭇 달라 보인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방관과 은폐, 늑장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을 받고 있다. 반면 북한은 지난달 말,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인의 입국을 막는 과감한 방역 조치에 나선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한국 등 보통 나라들이 확진 및 의심 환자를 병원이나 자택에 격리하는 데 비해 북한은 나라 전체를 격리했다고나 할까.

 이른바 ‘동원형 정치체제’로 분류되는 두 나라의 다른 대응은 사실 한 가지 핵심적인 공통점에서 나온다. 자유로운 언론, 그리고 약자의 목소리가 권력층에 전달될 언로의 부재 또는 빈곤이다. 초기에 사태를 직감한 의사들을 유언비어 유포자로 낙인하고 언로를 막은 것은 최고지도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한 원인 중의 하나다. 북한이 ‘국가 격리’라는 초강수를 둔 것도 변방에서의 바이러스 확산을 중앙이 감지하기 어려운 취약한 정치적 소통 메커니즘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도 바른말을 못할 테니 코로나19라는 글로벌 보건 이슈가 북한 체제에 미치고 있는 정치 경제적 파급효과를 최고지도부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북한 당국은 거듭 부인하고 있지만 중국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의 공식 비공식적 물동량이 끊어지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아랑곳 않던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발 바이러스가 중국이 그토록 우려했던 ‘대북 제재 효과성’을 키우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영변 핵시설과 대북 제재를 맞바꾸자는 ‘씨도 안 먹힐’ 제안을 할 때, 김정은의 속셈은 ‘중국이 뒤를 봐줄 것’이었을 게다. 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최고 수준으로 강화된 2017년부터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90%를 넘고 있다. 중국과의 공식 무역과 밀무역, 중국인 관광 등 세 가지 축은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그럭저럭 핵을 들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왔다. 핵을 포기하고 정상 국가로서 여러 나라들과 두루 교류하는 정답을 외면한 결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스스로 초래한 형국이다.

 모두 김정은의 자업자득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중국의 숨겨진 후진성과 공산당 정부의 대응 태세를 보았다면 김정은도 ‘아차’ 싶을 것이다.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이런 생각에 이르지 않을까. ‘아, 미국과의 대화가 잘 안된다고, 남한에 실망했다고 중국에만 너무 의존하면 안 되겠구나. 믿을 건 동맹밖에 없다지만 지금 북조선은 중국에 너무 민감하고 또 취약하구나.’ 자신의 깨달음이 상호의존(interdependence) 이론의 핵심이라는 것까지 안다면 그야말로 스위스 유학파라 할 만하다.

 국제정치학의 자유주의 계보에 속하는 이 이론은 국가 간의 관계를 민감성(sensitivity)과 취약성(vulnerability)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민감성은 의존관계에 있는 한 나라의 변화가 다른 나라에 미치는 마이너스적 영향을 말한다. 취약성은 일방이 상호의존 관계를 단절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일컫는다. 상대방에 비해 민감성과 취약성이 높을수록 의존적이라는 말인데 지금 북한이 딱 그 꼴이다.

 대대로 북한 김씨 일가는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하면서 어느 한쪽에 완전히 줄서는 것은 피했다. 하지만 든든한 후원국 소련의 ‘퍼주기’ 원조에 방탕하고 게을러졌고 1990년대 초 소련의 체제 전환과 함께 ‘고난의 행군’이라는 경제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혹시 생전의 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나?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신석호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