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공포가 웬만한 문제들을 압도해 버린 바람에 미세먼지가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봄이 지나고 있다. 사실, 올봄의 대기는 예년에 비해 깨끗하였기에 미세먼지로 인한 불편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상대적으로 강해진 바람과 잦은 강우 등 기상적인 요인이 작용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코로나19로 산업 활동이 위축되면서 화석연료의 사용이 줄어들었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의 배출량이 원천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실천하기 힘들었던 온실가스 감축이 바이러스 때문에 이루어지는 역설적인 결과다.
전 세계에서 주민들이 집안에 갇히고 도시가 봉쇄되거나 국경마저 통제되는 모습은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 속에 우리가 들어와 있는 느낌을 준다. 외계인의 침공이나 괴물이 나타나 인간을 위협할 때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다. 그런데 외계인도 아니고 무시무시한 괴물도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다.
이제껏 지구의 주인이 인간인 줄 알았다. 45억 년의 지구 역사에서 인간의 영향이 지질층에서 뚜렷이 남을 현세를 ‘인류세(Anthropocene)’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과학계에서 심각하게 논의될 정도였다. 그런데 지구적 차원에서 인간을 꼼짝 못하게 한 것이 바이러스라는 것에서 과연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를 의심하게 한다.
인간은 박테리아,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과 함께 공존하면서 진화해 왔다. 우리 몸은 1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보다 10배 많은 100조 개의 미생물이 우리 몸의 안과 밖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 몸의 미생물은 소화를 돕거나 면역 체계를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두뇌에까지 영향을 끼쳐 생각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런데 세균 크기의 1000분의 1일에 지나지 않는 바이러스가 미생물을 숙주로 삼아 활동하는 것이니. 결국 바이러스가 지구의 기후도 바꾸고 우리의 행동도 바꾸는 지구의 숨은 주인이란 말인가?
4월 19일은 한때 과학의 날로 기념된 적이 있었다. 1932년 ‘과학 조선’이라는 대중 과학잡지를 발행한 김용관 선생이 과학에 끼친 진화론의 영향을 기념하기 위해 찰스 다윈의 서거 50주기인 1934년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제정하였다. 진화론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모든 생명은 하나에서 기원한 것이며 인간은 많은 생명체 중의 하나로서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리라. 그러나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로 많은 생명체들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최근 프란체스코 교황은 코로나19가 “자연의 복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확실히 자연의 응답”이라며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학의 날은 그 후, 4·19혁명기념일과 겹치기도 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과학기술 전담 부처인 과학기술처가 발족한 날을 기념할 필요도 있었기에 1968년부터는 4월 21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다음 날인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모든 생명이 공생하며 지구를 아름답게 유지시켜 나갈 길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날이다.
이은택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