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울타리를 치는 습성이 있다. 나무 울타리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치는 공동체란 울타리이다. 이 울타리는 가족 혈연을 기준으로 만들기도 하고, 동향 언어 문화를 기준으로 두르기도 한다.
공동체란 단어는 감성을 자극하는 마력이 있는 단어다. 그러나 세상에 어떤 공동체도 이름처럼 아름답지 않다. 갈등이 있고, 갈등이 지속되면 공동체 밖의 얼굴도 모르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철저한 적이 되어 버린다.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은 탐욕이다. 그러나 탐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막바지로 달려가면서 전황은 아테네에 점점 불리해지고 있었다. 우위를 보이던 해전에서마저 스파르타에 밀리기 시작했다. 소아시아의 도시들과 아테네에 원한이 많은 페르시아가 적극적으로 스파르타를 지원했다. 자금이 풍부해진 스파르타는 해전에서 필수인 우수한 선원을 아테네보다 훨씬 쉽게 고용할 수 있었다.
기원전 406년 아테네에 급보가 도착했다. 레스보스섬에서 아테네군이 스파르타의 대함대에 포위되어 고사 직전이었다. 죽어가던 아테네가 가용할 수 있는 힘을 모두 짜내 150척의 대함대를 편성했다. 레스보스 근해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아테네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뒀다. 아테네군도 25척이 침몰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때 갑자기 폭풍이 불어서 함대가 조난자를 구하지 못했다.
함대가 귀환하자 몇몇 선동가들이 나서서 승리한 장군들을 기소했다. 장군들을 처형하면 재산을 몰수해 분배하겠다는 미끼를 던지고 장군 8명의 잘잘못도 따지지 않고 일괄로 유무죄를 결정하는 투표를 시행했다. 소크라테스는 불법을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장군들은 처형되었다.
더 우스운 일은 그들을 처형한 후 다시 민중이 분노해 선동가들을 처형하거나 추방한 것이다. 탐욕보다 무서운 것은 법과 제도가 힘을 잃고 사회의 집단지성이 최소한의 합리와 양심마저 상실하는 것이다. 아테네는 이렇게 몰락했고 지금까지 재기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