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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낮은 기념비

Posted August. 06, 2020 07:40,   

Updated August. 06, 202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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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한 자리씩 띄어 앉으신 거죠? 낯설지만 그래도 익숙해져야겠죠?”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일 열린 한 콘서트에서 반짝이는 은빛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선 옥주현이 말했다. 관객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띄어 앉은 풍경은 관객은 물론이고 그에게도 새로운 모습이었나 보다.

 “그거 아세요? 마스크를 쓰면 관객분들 표정이 의외로 더 잘 보인답니다. 눈이 또렷하게 드러나거든요. 어떤 분의 눈에서 빛이 반짝 나는 순간도 보일 정도예요. 앞으로도 (마스크의) 하얀 물결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에는 관객들을 다시 만난 데 대한 반가움이 진하게 묻어 나왔다. 동남아시아의 스콜처럼 양동이로 들이붓듯 폭우가 쏟아진 날이었지만 한 자리씩 비운 객석 대부분은 관객들로 가득 찼다.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던 이들이 앞 다퉈 공연장을 찾은 듯했다.

 지난달 22일부터 수도권에 있는 국공립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운영 재개 시점을 조정하고 있다.

 이전처럼 다시 공연을 보고,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돼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다만 지켜야 할 점도 있다. 공연장에는 이전에 비해 조금 더 일찍 도착하는 게 좋다. 발열 체크를 하고 온라인으로 문진표 작성을 한 후 그 결과가 담긴 QR코드를 티켓과 함께 제시해야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날 오페라극장 입구에서는 “QR코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라고 묻는 노년층 관객들도 상당수 있었다. 직원들은 1부, 2부 공연이 시작하기 전 객석 곳곳을 다니며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관객에게 “코가 덮이도록 마스크를 올려 주세요”라고 당부했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렌트’의 배우와 제작진은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무대를 채워가고 있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꿈을 노래하는 이 작품은 실제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모두가 가슴을 졸이며 연습했다. 다행히 공연이 시작됐지만 이달 23일 막을 내릴 때까지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다. 배우, 제작진, 관객 등 누구라도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즉시 공연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출신으로 스페인에 거주하는 ‘렌트’의 협력 연출가 앤디 세뇨르 주니어는 아이비 최재림 정원영 등 한국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외국은 공연장이 다 문을 닫아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일을 잃었다. 지금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절대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오직 오늘뿐(No Day But Today)’이라는 렌트의 주제가 특히 가슴에 와 닿는 요즘이기에, 한 회차 공연이 끝날 때마다 배우들은 울컥하며 눈물을 쏟아낸다고 한다.

 “거리에서 키스하며 데이트를 하는 로맨스 영화가 지금은 판타지 영화가 돼 버렸다”는 민규동 감독의 말은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일상이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건지 모른다. 그냥 주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손효림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