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는 8월 미국에서 차량 5만7015대를 판매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불황 탓에 대부분 차종 판매가 감소하며 1년 전보다 3715대 줄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텔루라이드만 1년 전보다 판매가 증가했다. 텔루라이드는 기아차가 지난해 2월 미국 시장 전용 모델로 선보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불황 속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와 기아차가 해외시장에만 내놓은 전용 모델들이 코로나19 불황 속에서 선전하고 있다. “우리 눈이 아니라 현지 고객의 눈으로 보라”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아차는 18일(현지 시간) 인도에서 신차 ‘쏘넷’을 출시할 예정이다. 크기가 작으면서도 좋은 연료소비효율과 향상된 편의사양을 원하는 인도 소비자의 특성을 반영한 소형 SUV로 인도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한다. 지난달 20일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2주도 안 돼 예약대수가 1만 대를 넘었다. 작년 8월부터 인도 공장에서 만들어 팔고 있는 셀토스와 함께 인도 SUV 시장을 공략할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셀토스 역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분기(4∼6월)에 월평균 판매가 4707대로 주춤했지만, 7월(1만675대)부터 다시 월평균 1만 대 판매 고지를 회복했다.
현대차의 브라질 전용 소형 세단 ‘HB20’은 2012년 현대차 브라질 공장 가동과 함께 첫선을 보인 후 브라질의 국민차로 자리 잡았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브라질에서 안정적인 주행 성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출시 이듬해부터 줄곧 브라질 완성차 판매 시장에서 10위권을 지키며 앞서 진출한 미국, 유럽, 일본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난해 말 출시된 HB20 후속 모델이 올해 2분기에 코로나19로 다소 주춤했지만, 1∼7월 누적 판매대수가 4만7783대로 현대차 해외 공장에서 생산되는 해외 전용 모델 중 최대 기록을 세웠다. 올해부터는 주변 남미 국가로도 수출하고 있다.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생산 중인 해치백(뒷좌석과 트렁크의 구분이 없는 차량) 씨드는 2006년 첫 출시 후 유럽시장의 장수 모델이 됐다. 유럽의 극심한 해치백 경쟁 속에서 꾸준히 판매를 이어가며 기아차의 올해 1∼7월 해외 전용 모델 중 가장 많이 팔렸다. 현대차의 유럽 해치백 모델 ‘i10 NIOS’와 중국 SUV 모델 ‘ix35’도 이 기간 누적 판매 3만 대를 넘기며 선전하고 있다.
해외 전용 모델은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를 비롯한 연구개발(R&D) 조직과 현지 마케팅 조직 간의 긴밀한 공조로 탄생한다. HB20의 차량 높이(전고)가 다른 현대·기아차 차들보다 10% 이상 높은 건 노면에 돌이 박혀 있고 과속방지턱이 높은 브라질의 험준한 도로 특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텔루라이드도 미국 중산층의 4인 가족 생활상을 꼼꼼하게 관찰해 널찍한 실내 공간을 확보했고 보조기억매체(USB) 충전단자 같은 편의사양도 충분히 넣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국내에서 호평 받은 차량을 그대로 해외로 수출하지 않고 현지 소비자들의 생활 특성과 도로환경을 면밀히 분석해 현지 전용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