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선 기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일 관계가 진전되기 위해선 한일 양국에서 지일파, 지한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한국 여권 인사 중 스가 총리와 개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꼽힌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내 핵심 인사들을 두루 알고 있는 이 대표는 특히 스가 주변 인물들과 친분이 두터워 비교적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국무총리였던 이 대표가 정부 대표로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에 참석했을 때 두 사람이 비공개로 만나 ‘책임감을 갖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의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정부 인사 중에는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스가 총리와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실장은 2013∼2014년 주일대사 시절 한 달에 한 번 이상씩 스가 총리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이병기-스가 라인’이 핵심 역할을 했다고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이 전 실장이 수감됐던 2년 동안 스가 총리가 직접 위로 메시지를 보냈다고도 한다.
일본 정계 최고의 지한파 인사는 집권 자민당의 2인자로 평가되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다. 그는 일본 내 반한, 혐한 분위기가 팽배해지면 이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일본의 대한(對韓)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로 한일 관계가 최악이었던 지난해 9월, 니카이 간사장은 한 TV 방송에 출연해 “일본이 손을 내밀어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전국여행업협회(ANTA) 회장이기도 한 그는 2017년 6월 한국 방문 때 일본 여행사 대표 등 민간인 360명과 함께 왔다. 올해도 1200명 규모로 한국을 방문하려 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잠정 연기됐다.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한의원연맹 간사장도 대표적인 지한파 인사다. 그는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한국 관련 사항을 직접 보고해 왔다. 스가 총리에 대해서도 한일 관계와 관련해 조만간 브리핑할 예정이다. 그는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해 ‘문희상 안’(한일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이 가능한 해법이라고 판단하고 물밑에서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한기재기자 reco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