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43개국에 걸쳐 있는 애플의 모든 매장과 법인 사무실은 100%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한다.”
2018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수년간의 노력 끝에 자랑스러운 순간을 맞게 됐다”며 이같이 선언했다. 이후 나이키, 스타벅스, BMW 등 글로벌 유수 기업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올해 들어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가 “2050년까지 모든 설비를 100%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력 사용량의 100%를 친환경 재생에너지, 즉 ‘녹색 전기’로만 사용하겠다는 정책을 ‘RE100’(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준말)이라고 부른다. 애플은 전 세계 사업장뿐만 아니라 협력사들을 대상으로도 자체적인 ‘클린 에너지 계획’ 동참을 추진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들에도 관련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RE100 동참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국내 기업은 LG화학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정부가 지난해 국내 기업의 RE100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마련한 ‘재생에너지 사용인정제도 시범사업’에 참여했다.
국내 기업들이 RE100 선언을 검토하면서도 섣불리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내 전기 공급 구조가 갖는 한계 때문이란 분석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재생에너지 생산자와 수요자(기업) 간 직접 거래를 의미하는 ‘PPA’가 활성화돼 있는 데 반해 국내 전력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모두 한국전력공사가 전기 생산 형태와 무관하게 독점 공급하는 구조다. 기업이 재생에너지만 골라 쓸 수 없는 것이다.
국내외 요구가 커지자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부터 한전을 중개자로 해 재생에너지 생산자와 수요자가 직접 거래할 수 있게끔 ‘제3자 PPA’ 제도를 신설한다는 방침을 마련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제도 보완에 나선 것은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한전을 중개자로 두는 만큼 송전망 이용으로 인한 중계수수료 책정, 거래 가격 및 계약 기간 조정 등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것도 현실”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선 신규 신재생에너지 발전단지에 직접 기업 인프라를 조성해 다가올 RE100 시대를 지원하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다. 이달 새만금 수상태양광 발전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민간 최대 수상태양광 발전 기업이 된 SK E&S가 발전 사업과 함께 데이터센터, 창업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해당 부지에 들어서는 기업 설비의 전력 100%가 새만금에서 나온 재생에너지로 충당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곽도영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