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이스라엘 병사 2명이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 근처에서 헤즈볼라에 납치당했다. 납치 지역이 이스라엘 국경 안이냐 레바논 지역이냐로 논란이 있었다. 즉 이것이 납치냐 정당한 체포냐는 것인데,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공격을 감행해 30여 일 동안 전쟁이 벌어졌다.
2014년에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저항조직인 하마스가 이스라엘 진지로 땅굴을 파고 들어와 병사 2명을 살해하고, 1명을 납치했다. 하마스는 이 병사를 살려두고 5년간 억류했다. 강경 일변도이던 이스라엘이 놀랍게도 협상에 응했다. 레바논 전쟁 동안 가중되는 국제적 비난도 비난이지만 전에 없던 국내에서의 반발도 이스라엘엔 큰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무려 1027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석방하는 전대미문의 1 대 1027의 교환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의 침략 행위가 정당하냐는 논쟁은 잠깐 접어두자. 두 사건의 해법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국가는 단 1명이라도 국민의 생명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고 유사 이래 권력의 존재 이유이다.
며칠 전 서해에서 벌어진 살해 사건의 피해자는 전시 상태의 병사도 아닌 민간인이었다. 오발도 오폭도 아닌 고의적인 살해였다. 우리 군과 정부는 하루 전 창군되었더라도, 정권이 하루 전 출범했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레닌 국가론의 최대 오류는 국가와 군대는 오직 지배층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아니다. 그런 기능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본질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의 보호였다.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시절에 운동권들은 레닌의 국가론을 좋아했다. 그 사람들의 본의는 지배층의 국가가 아닌 국민의 국가를 만들자는 뜻이었다.
최근 며칠 동안 벌어진 일을 보면 ‘국민의 국가’인지 ‘지지층의 국가’인지 ‘정권의 국가’인지 알 수가 없다. 하다 하다 ‘김정은 계몽전제군주론’까지 등장했다. 과거에 계몽전제군주란 기만적인 독재 권력에 불과하다며 열심히 비난하던 사람들이 과연 누구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