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트위터로 전격 경질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막판 내부 혼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정권교체기 레임덕 현상이 급속히 가속화할 수 있는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안보의 핵심 인사를 내쫓으며 정부 부처들을 뒤흔들고 있는 것. 국방 분야 리더십이 취약해진 상태에서 이란이나 북한이 무력도발을 감행할 경우 대응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우려된다.
에스퍼 장관의 경질은 일찌감치 예상돼 왔다. 에스퍼 장관 본인도 대선 결과가 확정된 직후 준비했던 사직서를 제출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퍼 장관은 6월 초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 진압을 위해 연방군을 투입하려 하자 그 근거가 되는 폭동진압법 발동에 반대한다는 뜻을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본 적이 없는 수준으로 격렬하게 분노를 표시했다고 한다. 에스퍼 장관은 이후 7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옹호해온 남부연합기의 군내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또 다시 충돌했다.
그러나 외교안보의 핵심인 국방장관 인사가 정권 교체기에 이뤄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 행정부 내부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틈타 이란 등 미국과 적대관계인 국가들이 무력 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핵 협상을 진행하게 될 북한이 몸값을 높이기 위해 사거리와 파괴력을 향상시킨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같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미 국방부의 리더십 공백은 이런 상황에서 개별 사령부를 넘어선 미국 행정부 차원의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런 가능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장관 경질이라는 강수를 두며 또 한 번 ‘마이웨이’ 행보를 보인 것이다. 후임으로 임명된 크리스토퍼 밀러 대테러센터장은 올해 8월 현 직책에 임명된 지 석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또다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테러 자문 및 국방부 부차관보 등을 거친 군 출신 인사다.
워싱턴포스트는 “에스퍼 장관의 경질로 이미 정치적 긴장과 잠재적 안보 리스크에 직면해있는 펜타곤이 또 다른 리더십 혼란에까지 빠져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애덤 스미스 하원 군사위원장은 이번 경질에 대해 “유치할 뿐만 아니라 무모하다”며 미국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불안정한 움직임”이라고 비판했다.
관가에서는 “다음 차례는 누구냐”는 말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명해온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이 교체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사권 외에도 퇴임 전까지 경제와 무역, 국내 정책 등 전방위 분야에서 행정명령을 통해 권한을 행사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 뉴욕타임스는 2명의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에스퍼 장관의 경질은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의 승리 기사로 도배돼 있는 언론에 자기 이름을 다시 낼 수 있는 기회”라고 전했다. CNN방송은 “에스퍼 장관이 경질된 이날은 미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거친 72일(트럼프 퇴임까지 남은 기간)의 첫날로 표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