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환상곡’의 익숙한 선율이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웅장하게 울렸다. 오케스트라 대형으로 배치된 발광다이오드(LED) 패널 55개에는 연주하는 단원 한 명 한 명이 비춰졌다. 실제 무대에 선 이는 권정환 지휘자뿐이고, 단원들의 연주는 녹화한 영상으로 대체됐지만 실황 연주처럼 느껴졌다.
이날 열린 ‘꿈의 오케스트라’ 10주년 기념 공연 ‘아이 컨택트(I CONTACT)’는 코로나19로 인해 유튜브로 중계됐다. 저소득층 아동 및 청소년이 악기를 배우는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의 한국형 프로그램인 ‘꿈의 오케스트라’(꿈오)에서 활동하는 단원 중 200여 명이 참여했다. 애잔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는 꿈오 홍보대사인 가수 헨리가 바이올린을, 김나래 양(경북예고 2학년)이 첼로를 협연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4악장’,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등 꿈오에서 10년간 가장 많이 연주한 5곡을 모은 ‘찬란한 꿈의 조각들’에서는 오산 강릉 평창 공주 대구의 단원들이 실시간으로 연결돼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악기 이름도 몰랐던 아이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빚어낸 소리는 풍성하고 맑았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꿈오는 2010년 8개 기관에서 단원 470명으로 시작해 현재 49개 기관에서 28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누적 단원은 1만9700여 명, 강사는 4000여 명에 이른다. 꿈오 운영비용은 문체부와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3년간 지원하고 이후 3년은 지자체가 절반을 부담한다. 이렇게 6년이 지나면 지자체가 온전히 맡아 운영한다.
피아노, 바이올린 정도만 알던 아이들은 클라리넷, 오보에, 팀파니, 콘트라베이스 등 난생 처음 본 악기를 배우며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익혀나간다. 김나래 양도 초등학교 5학년 때 꿈오 통영에서 첼로를 처음 만났다. “첼로 소리를 들으면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는 김 양은 빠듯한 형편 때문에 고민하다 첼로를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꿈오 선생님이 개인 레슨을 해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아카데미에 합격해 중학교 2학년 때 버스로 왕복 9시간 넘게 걸리는 서울과 통영을 혼자 오갔다. 이후 경북예고에 진학했다.
“내성적이어서 배달 주문 전화도 잘 못했는데 꿈오에서 모르는 친구들이랑 같이 연주하면서 밝아졌어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저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도 가르칠 거예요. 제가 받은 만큼 나누고 싶어요.”(김 양)
음악, 친구와 어울리며 아이들은 달라졌다. 꿈오 고창에서 활동한 한 학생은 부정적인 성격이었지만 콘트라베이스를 배우며 자신감을 얻었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어린 학생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꿈오 충주에 다니는 학생의 어머니는 “아이 일기장에 우울한 내용만 있어 마음이 아팠는데 악기를 배우면서 어느 대목이 연주가 잘 안 된다며 의욕을 보이거나 즐거운 얘기도 쓰며 밝아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싫어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한 학생은 꿈오 오산에서 첼로를 배우고 파트장이 되면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더 많은 경험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 가겠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꿈오 성동에서 지도하고 있는 윤용운 음악감독은 “하얀 백지 상태의 아이들을 보며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아이들이 개성대로 악기를 선택해 배우며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줘 오히려 힘을 얻었다”고 했다.
음악을 통해 소통하고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서로를 알아가는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음악은 힘이 세다.”
손효림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