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훌륭한 친구를 잃었고 세상은 전설을 잃었다. 언젠가 하늘에서 함께 공을 찰 것이다.”(펠레)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현지 시간)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0세. 3일 머리에 출혈이 생겨 뇌수술을 받은 마라도나는 11일 퇴원한 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자택에 머물다 숨을 거뒀다. 브라질의 펠레(80)와 함께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 마라도나의 사망 소식에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사흘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펠레와 리오넬 메시(33·아르헨티나) 등 축구 스타들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추모 글을 올렸다.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도 각별한 애도의 뜻을 표했다. 교황청은 공식 홈페이지에 이례적으로 ‘축구의 시인(Poet of Soccer)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1960년 10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가에서 3남 4녀 중 첫째로 태어난 마라도나는 16세에 프로에 데뷔했고 17세에 당시 역대 최연소로 국가대표에 뽑히면서 화려한 축구 인생을 열어갔다. 축구 인생 최전성기는 이탈리아 세리에A 나폴리에서 뛰던 1986년이었다. 그해 멕시코 월드컵에서 5골을 터뜨려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며 골든볼(최우수선수)까지 수상했다.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는 0-0이던 후반 6분 상대 골키퍼와 문전에서 공을 다투다 왼손으로 공을 때려 골을 넣었고 경기 뒤 “내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든 골”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마라도나는 첫 골을 넣고 4분 뒤 상대 수비수 6명과 골키퍼까지 제치고 득점하는 명장면을 연출하면서 팀의 2-1 승리에 앞장섰다.
그라운드에서는 최고였지만 각종 기행으로 ‘악동’이라는 수식어도 달고 다녔다. 나폴리 시절인 1991년에는 코카인 복용이 밝혀져 15개월 자격 정지를 당했고, 1994년 미국 월드컵 도중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양성 반응이 나와 중도에 귀국했다. 자신의 별장까지 와 취재하던 기자에게 공기총을 쏴 집행유예 판결을 받기도 했다. 2008년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에 선임됐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8강에 그쳤고, 아르헨티나, 중동, 멕시코 등에서 클럽을 지휘했지만 지도자로서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가 전성기를 보낸 이탈리아에서도 추모 열기는 뜨겁다. 특히 나폴리 주민들은 마라도나가 그려진 티셔츠와 사진, 그리고 촛불을 든 채 거리에 모여 애도에 나섰다. 발코니에 등번호 10번이 새겨진 마라도나의 유니폼을 내거는 집도 많았다.
마라도나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나폴리에서 뛰었다. 1926년 창단했지만 만년 꼴찌였던 나폴리는 마라도나가 온 뒤 팀 사상 첫 우승을 포함해 두 차례 리그 정상 등극에 유럽축구연맹(UEFA)컵까지 품에 안았다. 마라도나가 떠난 뒤 나폴리는 리그에서 더는 우승하지 못했다. 2017년 마라도나에게 명예시민증을 준 나폴리시는 그의 사망 소식에 나폴리 홈구장 이름을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 · 김윤종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