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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수수께끼

Posted August. 09, 2021 07:22,   

Updated August. 09, 2021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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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는 왜 나만 보면 웃으셨을까. 나는 그 수수께끼가 좋다. 그 무서운 할아버지도 나를 좋아했는데 누가 나를 싫어할까 싶은 이 세상에 대한 나의 친밀감과 믿음이 그 수수께끼의 해답이기 때문이다.” ―박완서 ‘노란집’ 중

 마흔 살, 애 있는 남자와 재혼해 여덟 살 사내아이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 이 문장은 내게 삶의 지표이자 매일 기억하고 실천할 경전이었다. “아이를 볼 때마다 웃자.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함박웃음을 짓자. 그래서 세상에 대해 친밀감과 믿음을 갖게 하자.”

 아들의 등하교 때마다 문가에서 활짝 웃으며 배웅하고 맞았다. 아이가 제 방에서 나올 때나 나를 찾을 때도 ‘너를 마주보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고 전하기 위해 얼굴 가득 웃음을 담았다. 결혼 전엔 주위는 물론 나 역시 남이 낳은 아이를 기르는 게 힘들까봐 걱정했지만 막상 한집에서 살게 되자 아이가 예쁘고 가여워 그저 잘해주고만 싶었다.

 당시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다. 이십대 중반 브라질에 유학 가 남미 전문가가 되겠다던 꿈은 학위를 얻지 못해 산산이 부서졌다. 삼십대 중반 서울에 돌아와 간신히 잡은 잡지사 기자 일도 적응 못한 채 포기했다. 직장도 경력도 돈도 없는 내게 아직 남은, 인생에서 뭔가 괜찮은 걸 달성할 가능성은 그 예쁘고 가여운 여덟 살짜리의 좋은 엄마가 되는 일 뿐이었다. 아들이 커서 내 품을 떠난 후에도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장착하고서 살아갈 수 있도록 키우는 것. 이번 생에서 그것만이 내가 이룰 유일한 성취일 테니 나는 필사적이어야 했다.

 그런 간절함을 품고 키운 내 아들은 지금 스물다섯 살이다. 세상의 편견과 달리 새엄마가 됐다는 건 인생의 큰 축복이자 성취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지금도 아들과 마주칠 때 세상 가장 환한 웃음이 저절로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