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년 파리 살롱전은 그림 한 점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역사나 신화 속 영웅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일어난 조난사건을 다룬 작품 때문이었다. 메두사호의 비극을 생생하고 비참하게 그려낸 이 그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도대체 메두사호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816년 7월 2일 아프리카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파견된 프랑스 해군 군함 메두사호는 암초에 걸려 난파했다. 400명을 태운 배의 선장은 쇼마레라는 이름의 해군 장교였다. 경험도 없고 무능했지만 왕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임명된 낙하산 인사였다. 게다가 그는 돈을 받고 정원 외 사람을 더 태웠다.
배가 침몰하기 전 승객들은 급히 구명보트에 올랐다.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했다. 보트에 타지 못한 나머지 149명은 뗏목을 만들어야 했다. 보급품이 없는 상황에서 폭풍까지 만난 뗏목은 생지옥이 되었다. 기아, 탈수, 질병, 난동, 광기, 살인, 자살, 급기야 식인 행위까지 벌어졌다. 13일의 표류 끝에 구조된 생존자는 15명뿐이었다.
27세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메두사호 사건을 화폭에 담아 영원히 기록하고자 했다. 그는 생존자들이 구조되던 날을 재현했다. 멀리 구조선이 보이자 뗏목 앞쪽 사람들은 희망에 차서 수건을 힘껏 흔들고 있다. 반면 시신이 있는 뗏목 뒤쪽은 절망으로 가득하다. 무릎 위에 아들 시신을 올려놓은 노인은 모든 것을 체념한 모습이다. 제리코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생존자들을 인터뷰하고, 목수를 고용해 뗏목 모형도 만들었고, 시체를 관찰하기 위해 시신 안치소까지 찾았다. 철저한 준비를 거쳐 제작된 그림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림이 공개되자 분노와 찬사가 동시에 쏟아졌다. 사건을 은폐하려던 왕과 정부 관료들은 당혹스러웠다. 200년 전 그림이 여전히 울림을 주는 건, 부패한 지도자가 이끄는 국가는 결국 메두사호처럼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교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