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7.9cm, 길이 12.7cm의 은으로 만든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 정사각형 몸체 위에 거북이가 목을 길게 내밀고 앉아 있다. 1882년(고종 19년) 제작 후 약 140년의 세월을 반영하듯 금도금이 벗겨져 있다. 대군주보와 1740년(영조 16년) 제작된 ‘효종어보(孝宗御寶)’ 등 조선 국새와 어보(御寶·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는 모두 귀뉴(龜紐·거북 모양의 손잡이)를 갖고 있다. 십장생(十長生) 중 하나인 거북이를 통해 왕의 장수를 빌고, 다산(多産)을 통한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다. 문화재청은 올해 6월 조선의 마지막 국새 대군주보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이달 25일 발간하는 월간문화재 봄·여름호 ‘동물의 왕국’은 각종 문화재에 담긴 동물들의 의미를 조명한다. 예컨대 다음 달 중순 야간 개장을 하는 경복궁 곳곳에도 동물 상징이 자리하고 있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입구에는 해치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고 머리에 뿔이 달린 상상의 동물 해치는 왕을 도와 옳고 그름을 가리고, 불의를 보면 뿔로 물리치는 ‘법과 정의의 화신’이다. 경복궁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국보 제223호) 주변에도 22개의 해치상이 있다. 왕실 수호자인 해치를 통해 왕의 영역을 알리는 동시에 근정전을 오가는 대신들이 법과 정의에 따른 정치를 하도록 경계하는 의미를 담았다.
근정전과 더불어 경복궁을 대표하는 경회루(慶會樓·국보 제224호)에는 화재가 끊이지 않던 경복궁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한 동물이 있다. 경회루는 흥선대원군(1820∼1898)이 경복궁 중건 후 화재를 막기 위해 1867년(고종 4년)에 만든 인공 연못이다. 경회루 북쪽 자시문을 지나 누각으로 향하는 돌다리에는 곰의 몸에 코끼리의 코를 지닌 상상의 동물 ‘불가사리’ 석상이 놓여 있다. 불과 상극인 쇠를 먹는다고 알려진 불가사리를 통해 화재를 막고자 한 선조들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과거 높은 위세를 상징하던 동물이 세월이 흘러 재해석되기도 한다. 예컨대 아시아에서 용은 왕을 상징했고, 사신(四神) 중 하나인 청룡은 죽은 이를 보호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대중문화에서 용은 힘을 잃은 무력한 존재로 묘사될 때도 있다.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80)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하쿠’는 강을 수호하는 백룡이지만 마녀 ‘유바바’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그려진다.
동물의 왕국을 기획한 김태영 한국문화재재단 홍보과장은 “동물이 지닌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동물은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동물을 통해 대중들이 문화재에 쉽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기욱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