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야구를 ‘인치의 게임(a game of inches)’이라고 한다. 1인치(2.54cm) 차이로 아웃과 세이프, 페어와 파울, 삼진과 볼넷이 갈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3인치(7.62cm) 차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류현진(34·토론토·사진)이 7일 뉴욕 양키스타디움 마운드에 올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던진 컷패스트볼(커터)이 그랬다. 류현진은 이날 시즌 평균보다 커터의 수평 움직임이 3인치 늘어난 공을 던졌다. 오른손 타자 시선에서 보면 공이 평소보다 멀리서 시작돼 몸쪽으로 휘어 들어왔다.
커터가 속구와 슬라이더 사이로 변하는 공이라면 류현진은 이날 슬라이더와 커터 사이로 변하는 공을 던진 것이다. 류현진 본인도 이 공을 “슬라이더성 커터”라고 표현했다.
변화 폭만 커진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 투구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이날 류현진이 던진 커터 평균 시속은 88.6마일(약 142.6km)로 시즌 평균보다 약 2.5마일(약 4km) 빨랐다. 더 빠르면서도 더 많이 휘는 ‘고속 슬라이더’를 구사한 셈이다. 류현진은 이날 이 공을 속구(30개) 다음으로 많이(22개) 던졌다.
효과도 좋았다. 최근 2경기 연속 승수 쌓기에 실패했던 류현진은 이날 양키스 타선을 상대로 6이닝 동안 공 80개를 던져 6탈삼진 무사사구 3피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 투수가 됐다. 팀의 8-0 대승을 이끈 류현진의 시즌 기록은 13승 8패, 평균자책점 3.77이 됐다.
게릿 콜(양키스·14승)에 이어 아메리칸리그 다승 단독 2위에 오른 류현진은 “오늘 경기를 앞두고 (본인 대신 토론토 1선발 자리를 꿰찬) 로비 레이(30)의 투구 내용을 많이 공부했다”면서 “레이는 속구와 슬라이더만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나도 (비슷한) 구종을 던질 수 있으니 그 구종을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레이는 이날 현재 11승 5패, 평균자책점 2.60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모든 게 다 좋았던 건 아니다. 류현진은 “평소에 잘 안 던지던 구종을 던지면서 몸에 타이트한 느낌을 받았다. 무리하고 싶지 않아서 (6회가 끝난 뒤) 감독님, 코치님과 이야기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면서 “큰 문제는 아니라 다음 선발 등판은 문제없다. 똑같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앞으로 4번 정도 선발 등판이 가능하다. 이 중 2승만 올리면 시즌 15승으로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새로 쓸 수 있다. 현재까지는 LA 다저스 시절 세 차례(2013, 2014, 2019년) 기록한 14승이 개인 최다 기록이다.
황규인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