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등 세계 각국에 이어 그동안 금리인상을 주저했던 유럽도 통화 긴축의 대열에 합류한다. 일각에서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유럽이 금리를 올리면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이후 11년 만이 된다.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21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할 것이 확실시된다. ECB는 2011년 7월 마지막으로 금리를 올린 뒤 경기 부양을 위해 조금씩 금리를 낮춰 왔고, 2016년 3월부터는 6년 이상 ‘제로(0) 금리’를 유지해 왔다.
당초 시장에서는 ECB가 이번에 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올 6월 ECB가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이 같은 인상 폭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달 발표된 6월 유로 지역 물가상승률이 8.6%까지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빅스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국이 지난달에 이어 이달 말에도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유럽의 빠른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로 인해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물가 상승을 더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ECB가 빅스텝을 단행한다면 예금금리(기준금리의 한 종류)도 ―0.5%에서 0%로 올라 2014년부터 8년간 이어진 ‘마이너스 금리 실험’이 끝나게 된다. FT는 “ECB가 0.5%포인트 인상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끝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통화정책 결정을 앞두고 기존보다 큰 폭의 금리인상에 대한 전망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9%대 물가상승률에 신음하는 영국 역시 빅스텝 카드를 검토 중이다.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19일 열린 행사 연설에서 “다음 달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선택지 중 하나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금리를 0.5%포인트 올린다면 영란은행이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한 1997년 이후 처음이다.
다만 유럽과 영국의 금리인상은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자칫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를 더 침체시킬 우려도 크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대란의 직격탄을 맞은 데다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은 높은 부채비율과 정치적 리스크에도 노출돼 있다. 이에 제2의 남유럽 재정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다만 19일 유럽 증시는 금리인상으로 유로화 가치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에 급등세로 마감했다.
박민우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