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펠로시 만남 대신 통화…의전 혼선 노출한 ‘중추국가’ 외교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오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전화통화를 하고 미국 의회 대표단의 방한을 환영했다. 특히 펠로시 의장 일행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방문에 대해 “대북 억지력의 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대만을 전격 방문해 중국을 강력 비판했던 펠로시 의장은 이번 방한에선 북핵 위협에 맞선 확장억지 강화 등 대북 메시지에 주력했다. 그는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 JSA 방문을 마친 뒤 일본으로 출국했다.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통화는 당초 예정에 없던 일정으로 과공(過恭)과 비례(非禮) 사이에서 찾아낸 의전상 절충으로 볼 수 있다. 휴가 일정 때문에 별도의 만남 계획을 마련하지 않았던 윤 대통령은 지방 행을 취소하고 서울에 머물던 터에 동맹국 의회 수장의 방한을 외면하는 것도, 그렇다고 휴가 중에 나오는 것도 어색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그제까지 대통령실이 두 사람의 만남을 두고 혼선을 빚은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대통령실은 그제 오전 윤 대통령의 휴가를 들어 만남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오후 들어 ‘깜짝 만남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보도가 나오자 “만남을 조율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가 다시 “조율 과정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대통령실은 어제 아침에야 두 사람이 통화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중국의 거센 반발과 함께 군사적 초긴장 대결을 낳았다. 중국은 어제 대만을 해상과 공중에서 사실상 봉쇄하는 실탄 군사훈련에 들어갔고 무력 충돌 우려도 큰 상황이다. 이런 대결 국면은 한국에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더욱이 24일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관계 재정립을 추진하는 정부로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신냉전이 격화할수록 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대결의 최전선에 있는 처지에선 가까운 이웃이자 최대 교역국과 척을 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어느 때보다 치밀한 대외전략 아래 무겁게 움직여야 한다. 의전 문제를 놓고도 그때그때 기류나 주변 입방아에 흔들리는 모습으론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목표도 무색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