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앙아시아와 중남미, 서아프리카 국가와 잇달아 다국적 협력체를 신설했다. 최근 더딘 경기 회복과 지도부 혼란으로 중국이 국제 무대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 ‘글로벌 사우스(신흥개발국)’ 포섭에 속도를 낸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에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 달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기로 한 가운데 패권 경쟁 중인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합종연횡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中 자리 비운 사이 글로벌사우스 포섭 속도 낸 美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일 유엔 총회 참석을 계기로 뉴욕에서 중앙아시아 5개국과 이른바 ‘C5+1(미국)’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이 2015년부터 C5+1 외교장관 회담을 해 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과 정상회담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5+1 협의체는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에서 중국의 해외 경제 영토 확장 사업인 일대일로 구상을 견제하기 위해 창설했다. 이 5개국은 중국과 유럽을 잇는 일대일로 육상 실크로드 구상의 핵심 국가들이다.
특히 올 5월 옛 소련 붕괴 후 처음으로 이 5개국 정상을 육상 실크로드 출발지 시안(西安)으로 초청해 ‘C(중국)+C5’ 정상회의를 가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맞불을 놓은 것이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앙아시아의 방대한 광물 자원 개발을 위한 C5+1 핵심 광물 협의체 출범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또 ‘중간 회랑(回廊)’으로 불리는 카스피해 횡단 무역로 구축도 논의했다. 핵심 광물 등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디리스킹(derisking·공급망 위험 제거)을 위해 러시아 및 중국 영향력이 큰 중앙아시아를 끌어들이겠다는 속내다. 또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을 비롯한 ‘신스파이스 루트(향신료길)’를 조성한 데 이어 육상 실크로드에서도 중국과 경쟁에 나선 셈이다.
미국은 18일에도 대서양을 끼고 있는 유럽과 서아프리카, 중남미 등 33개 국가가 참여하는 대서양협력체(PAC)를 출범시켰다. PAC에는 브릭스(BRICS) 핵심국 브라질은 물론이고 중국이 해군기지 건설을 시도하는 적도 기니, 일대일로에 참여 중인 나이지리아 등이 포함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25일에는 백악관에서 태평양 도서국(島嶼國)과 두 번째 정상회의를 한다.
● 中 “일대일로 10주년 포럼에 110여 개국 대표 참가”
미국이 그동안 중국이 공들여 온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광폭 행보에 나선 것은 미중 경쟁 등에 따른 경제블록화 조짐이 나타나는 가운데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이 2012년 집권한 이래 처음으로 G20 정상회의를 건너뛴 데 이어 유엔총회에도 불참한 틈을 활용해 글로벌 사우스를 전방위적으로 공략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PAC 등을 언급하며 “이 중대한 시기 미국 대통령의 의무는 미국을 이끌고 공통 목적으로 연결된 모든 지역 국가들과 협력하는 것”이라며 “이런 파트너십은 어느 국가를 봉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한미 상호방위조약 또는 미일 안전보장조약 방식의 안보 협정을 맺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중국의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 중재로 일격을 맞은 중동에서도 실추된 영향력을 다시 다지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다음 달 일대일로 10주년을 맞아 수도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정상포럼에 세계 110여 개국 대표가 참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대일로 정상포럼에는 푸틴 대통령도 참석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문병기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