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인 건 아시죠? 기록 안 남게 현금으로 주셔야 할 것 같은데….”
부산에 있는 한 사설 구급차 업체 대표 A 씨는 동아일보 기자가 “회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공항으로 급히 가야 하는데 구급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느냐”고 묻자 “30만 원만 주면 가능하다”며 이렇게 답했다. 그는 “원래 40분 넘게 걸리는 거리지만 30분 안에 데려다 줄 수 있다”고도 했다. 애초 환자만 탈 수 있는 구급차인데도 경증환자 기준 기본 요금인 3만 원보다 10배 비싼 웃돈을 버젓이 요구하며 불법 택시 영업을 하고 있었다.
30일 동아일보 취재 결과 이렇게 ‘총알택시’처럼 불법 영업을 하는 사설 구급차 업체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꼼수 영업이 근절되지 않을 경우 응급 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구하지 못해 ‘표류’하는 것처럼, 정작 구급차가 급하게 필요한 환자들이 이용할 수 없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환자처럼 연기만 해달라” 요구하기도
동아일보가 전국에 있는 사설 구급차 업체 80곳에 전화를 걸어 회사 업무용으로 사설 구급차를 이용할 수 있는지 문의한 결과 10곳(12.5%)에서 “가능하다”고 답했다. 최근 god 출신 유명 가수 김태우 씨를 사설 구급차에 태워 행사장으로 이동시켜 주고 30만 원을 받은 운전사가 실형을 선고받아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도 관리 감독이 허술한 틈을 타 여전히 불법 영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사설 구급차 업체 측은 스스로 불법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웃돈을 요구했다. 충남에 있는 사설 구급차 업체 관계자는 “충남 천안시에서 김포공항까지 이동하려 한다”고 문의하자 “1시간 반 안에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40만 원은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 아니냐”고 묻는 질문에 도리어 편법을 알려주며 안심시키는 업체도 있었다. 한 사설 구급차 관계자는 “원하는 목적지에 내려도 문제 없지만 불안하면 목적지 근처 병원에 내려주겠다”고 했다. 전남에 있는 다른 업체 관계자는 “우리 직원인 간호사가 구급차에 같이 탈 테니 손님이 환자인 척 연기만 하면 된다”며 “이송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현금으로 비용을 내달라”고 했다.
● 정부 “운행기록 등록 의무화, 요금 현실화 등 대책 마련 중”
응급의료법 등 따르면 구급차 운전사가 응급환자 이송 외에 다른 용도로 차량을 운행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또 영업 허가가 취소되거나 6개월 이내에 업무 정지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1차 위반 시 통상 시행규칙에 따라 업무 정지 15일 처분 수준에 그치다 보니 업체들은 불법 영업을 강행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들은 “10년째 요금이 동결된 탓에 우리도 불법인 줄 알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대로 사설 구급차 이용 요금이 결정되는데 2013년 경증환자 대상 일반 구급차는 3만 원, 중증환자 대상 특수 구급차는 7만5000원으로 기본 요금을 정한 후 인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사설 구급차 업체 대표는 “보험료와 기름값을 내고 나면 손익분기점도 넘기기 힘든 업체가 상당수”라며 “현재 요금보다 최소 20∼30%는 인상돼야 불법 영업이 근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현장에선 벌써 구급차를 제때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경기 수원시의 한 응급실에서 일하는 전문의 최석재 씨는 “지난해 겨울 응급실에 내원한 심근경색 환자를 신속하게 대형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는데 사설 구급차 확보가 늦어져 30분 넘게 방치돼 있었다”며 “현장에선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고 했다.
복지부는 사설 구급차 불법 영업 근절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설 구급차를 일제 점검하더라도 용도 외에 사용했는지 확인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모든 운행 기록을 의무적으로 전산 등록하거나 요금을 현실화하는 방안 등을 내년 말부터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환기자 payb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