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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때 아이 언어발달 지연”…영어 대신 독서학원 인기

“코로나때 아이 언어발달 지연”…영어 대신 독서학원 인기

Posted November. 07, 2023 08:02,   

Updated November. 07, 2023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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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영어 교육보다 국어 교육이 우선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 두 명을 둔 이정현 씨(43)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일 때 대면 수업을 안 해서 그런지 기본적인 국어 능력이 부족한 게 눈에 띄게 나타나 아이들을 독서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코로나19 시절 종이책보다 태블릿PC를 많이 보는게 습관이 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며 “이제 독서학원 다닌 지 1년쯤 됐는데 주술관계를 제대로 쓰는 문법과 어휘력이 부쩍 늘었다”고 덧붙였다.

● ‘영어유치원’ 대신 ‘독서학원’ 보내는 학부모들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있는 독서학원. 지난달 말 찾아간 이 독서학원에선 10명 남짓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저마다 책장에서 책 한 권씩을 꺼내들고 책읽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내가 왜요’라는 책을 골라 읽던 이모 군(9)은 책장을 넘기다 ‘과로’라는 단어를 보고 이해가 안 되는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라고 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생님이 “과로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피로가 많다는 뜻”이라며 “‘과’는 보통 너무 많은 걸 뜻하는 글자인데 ‘과식’도 많이 먹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군의 아버지 이모 씨(42)는 “집에서 책을 읽게 하면 앉아서 책장은 넘기고 있는데 내용을 전혀 이해를 못했다”며 “올 7월부터 책읽기 습관을 길러주려고 독서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독서지도를 하면서 어휘와 논술 등을 가르치는 독서학원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경북 구미시에서 독서학원을 운영 중인 박은희 원장(48)은 “아이의 문해력 저하를 걱정하는 학부모의 문의 전화가 일주일에도 몇 건씩 온다”며 “최근 주위에서도 독서학원이 계속 생겨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 발달지연 아동 4년 만에 2배 늘자 국어 사교육비도 껑충

최근 아동청소년이 언어 발달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독서학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몇 년 동안 코로나19 확산과 맞물려 비대면 문화가 확산됐고, 마스크 착용 등으로 아동청소년이 대면 의사소통을 통해 언어능력을 키울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글 읽기 대신 쇼트폼(길이가 짧은) 동영상을 시청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도 언어발달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2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0∼19세 발달지연 진료 환자는 2018년 6만957명에서 2022년 11만6838명으로 나타났다. 4년 만에 2배에 가까운 5만5881명(91.7%)이 늘어났고, 올 상반기에만 10만1228명으로 집계돼 5년 연속 증가 추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학부모들은 독서학원과 같은 국어 교육에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통계청이 올 3월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어 사교육비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 규모는 전체 학생 기준 영어 12만3000원, 수학 11만6000원, 국어 3만4000원 순이지만 증가율은 전년 대비 국어 13.0%, 영어 10.2%, 수학 9.7% 순이었다.

● 전문가 “독서교육 통해 대면 소통 기회 늘려야”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의 언어 발달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독서 교육을 통해 대면 소통을 늘려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혜원 서경대 아동학과 교수는 “아이가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맥락 내에서 의사소통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문해력도 중요하다”며 “독서는 문해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은경 한국언어재활사협회장은 “단순히 독해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아니라 대면 소통이 부족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동청소년도 있다”며 “대면 독서 교육을 통해 소통 능력을 키울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승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비대면 문화에 익숙한 아이들에겐 독서를 습관화할 수 있도록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학생 수준에 맞는 수준별 도서를 더 보급하고, 교사들은 학생이 책을 집중해서 읽을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채완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