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중 관계 안정화를 위한 두 번째 대면 정상회담을 했다. 6년 7개월 만에 미국을 방문한 시 주석을 맞은 바이든 대통령이 군사 소통 창구 복원을 정상회담 성공 조건으로 제시한 가운데 양국은 회담에 앞서 기후변화 대응 공동성명을 내놓으며 초(超)국가 이슈에 대한 협력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중동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북-러 무기 거래, 대만해협·남중국해 분쟁 등 글로벌 현안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두 정상이 각각 재선 캠페인과 중국 사회 불만 진화를 위해 미중 갈등의 일시 봉합을 택했다는 지적과 함께 “역대 정상회담 중 성과 기대치가 가장 낮은 회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 美 “중국과 협력 주저하지 않을 것”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6년 7개월 만에 방미한 시 주석을 직접 맞이한 뒤 취임 후 두 번째 정상회담을 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14일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하기 전 회담 성공 기준에 대해 “정상적 소통 경로로 복귀하는 것”이라며 “위기가 닥쳤을 때 전화를 걸어 대화하고 군 당국이 서로 연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도 “협상 테이블은 이미 마련됐다”며 “중국과 경쟁하지만, 특정 분야에서 필요하다면 협력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 정상은 회담 후 공동성명을 내지 않기로 했지만 군사 분야 소통 채널 복원과 함께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단속 협력을 위한 워킹그룹 출범 등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14일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법의학연구소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법의학연구소는 2020년 신장위구르 자치구 인권 탄압에 연루된 혐의로 미 정부 제재 대상에 올랐고, 중국은 펜타닐 단속 협력 조건으로 제재 해제를 요구해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주요 기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양국은 이날 기후 공동대응 워킹그룹 출범에 합의한 ‘서니랜드 성명’을 내놨다. 앞서 미중 기후변화를 다루는 존 케리 미 특사와 셰전화(解振華) 중국 특사의 4∼7일 캘리포니아주 서니랜드 회담 합의에 따른 것이다. 이 성명에는 미중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늘리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 내부 위기 대응 급한 미중 정상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관계 안정화의 이유로 중국 경기 침체와 미중 경제 윈윈(Win-Win)을 강조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중국인들이 괜찮은 급여를 받는 직업을 가진다면 그들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이익”이라고 말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재선에 집중하기 위해 양국 관계 안정화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중동 전쟁과 북-러 무기거래, 대만해협 같이 미중 입장이 첨예하기 엇갈리는 핵심 현안에 대해선 견해차를 확인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로이터는 시 주석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언급하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확언을 거듭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합의한 ‘발리 합의’ 내용과 일치한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미중이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봉쇄와 이란 핵 보유 방지 등을 합의하던 시절은 끝났다”고 평가했다.
또 중국 경제 상황이 어려운 만큼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등 첨단기술 투자 및 수출 규제 등도 심도있게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정상회담 후 미 재계 지도자들과 만찬 자리를 마련한 것은 이 같은 성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워싱턴=문병기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