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 나오는 문구다. 잔인한 말 같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보며 위로받는다. 19세기 덴마크 화가 프란츠 헤닝센은 불행에 처한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헤닝센은 초상화, 풍경화, 장르화, 심지어 동물화에도 능했지만,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건 바로 이 그림 ‘장례식’(1883년·사진)이다. 눈 내린 추운 겨울날,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의 가족이 묘지로 향하고 있다. 어린 두 남매가 손을 꼭 잡고 앞장서고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노인의 부축을 받으며 뒤따르고 있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하리만큼 희고 몸은 임신한 상태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이 아이들의 아빠이자 여자의 남편이다. 친구나 친지도 없는지 장례식 참석자는 이들뿐이다. 여자는 남편을 잃은 슬픔도 크지만 배 속 막내까지 어린 삼남매를 홀로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막막할 테다. 의지할 데라곤 늙은 친정아버지밖에 없어 보이지만 노인의 표정도 심란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그림 속 배경은 코펜하겐에 실제로 있는 공동묘지다. 화가는 서민 가족의 불행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고심했던 듯하다. 우울한 겨울 날씨, 휑한 벽, 가족밖에 없는 장례식, 창백한 여자 얼굴까지, 비극과 절망감을 배가시키는 장치들이다.
주목할 점은 오른쪽 중경에 있는 두 남자다. 거리를 두고 이 가족을 지켜보고 있다. 헤닝센은 그림의 감상자들도 같은 구경꾼의 시점으로 이들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 그림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감동하며 찬사를 보냈고, 덴마크 국립미술관은 즉시 소장품으로 사들였다.
대부분의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 잘난 사람과의 비교는 더 큰 불행을 낳는 법. 사람들이 이 그림에 찬사를 보낸 건, 이 가엾은 가족의 불행에서 크게 위로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화가는 주변의 불행을 살피고 행복을 깨달으라는 의미로 이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