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는 멕시코의 국경일 망자(亡者)의 날과 관련된 따뜻한 애니메이션이다. 멕시코인들은 매년 11월 초면 조상들의 사진과 그들이 좋아했던 음식과 음료, 꽃과 물건을 제단에 챙겨놓는다. 조상들이 그들을 찾아오는 날이다.
열두 살 소년 미겔의 집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돌아가신 고조할머니 사진은 있는데 고조할아버지 사진이 없다. 음악을 한다고 아내와 딸(코코)을 두고 집을 나간 사람이어서 그렇다. 고조할머니가 신발 만드는 기술을 익혀 남편 대신 가족을 부양했고 가족은 대대로 신발 만드는 일을 했다. 그들은 음악에 한이 맺혔다. 미겔이 노래하고 싶다고 할 때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다. 심지어 할머니는 그가 장기 자랑에 나가겠다고 하자 기타를 부숴버린다.
그러나 그들은 미겔의 고조할아버지가 독살당해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가 가족한테 돌아가겠다고 하자 동료는 그를 죽이고 그가 작곡한 곡들을 가로채 유명해졌다. 그래서 그는 억울하게 죽은 데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니 망자의 세계에서도 소멸의 위기에 처한다. 그러한 내막을 알게 된 미겔이 코코 할머니에게 말한다. “할머니마저 잊으면 그분은 영원히 사라져 버릴 거예요.” 아무 반응이 없자 그는 기타를 켜며 이런 노래를 부른다. “내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너는 내 마음속에 있을 거야. 내가 너를 품에 안을 때까지 날 기억해주렴” 코코 할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버지가 그녀에게 불러주던 노래였다. 집안의 저주였던 음악이 이제는 아버지에 대한 억압된 기억을 되살리는 촉매가 된다. 얼마나 보고 싶은 아버지였던가. 기억이 살아나면서 아버지도 살아난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사람들은 세상을 떠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묘한 논리다. 우리의 기억과 그리움이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을 살아 있게 한다니,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우리는 기억한다. 따라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