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36·사진)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영화계 최고 권위의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계 여성으로는 첫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다. 송 감독은 영화 ‘넘버3’(1997년)의 송능한 감독의 딸로, 영화는 셀린 송 감독의 데뷔작이라 수상 여부에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23일(현지 시간) 제96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로 ‘패스트 라이브즈’와 송 감독을 각각 지명했다. 한국인 또는 한국계 감독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것은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2021년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이후 세 번째다.
지난해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된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에서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남녀가 20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인생과 인연, 사랑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로맨스·드라마 작품이다. 송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앞서 열린 다수의 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제58회 전미 비평가협회상 작품상 및 제33회 고섬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앞서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 수상이 불발됐다. 또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외국어영화상, 오리지널 각본상 등 3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주인공 나영 역의 그레타 리는 한국계 미국인이고, 남자 주인공 해성은 한국 배우 유태오가 맡았다. 두 사람은 한국어 대사로 이야기하고, 한국 촬영분이 많다.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와 CJ ENM이 공동으로 투자 배급한다.
송 감독은 아카데미 후보로 오른 것에 대해 “영화를 알아봐 준 아카데미에 감사하다. 믿기 어려운 영광이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감사함이 교차한다. 특히 첫 영화로 이런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이어 “영화에 담긴 ‘인연’이라는 개념은 동일한 장소, 동일한 시간에 존재함으로써 느끼는 기적적인 연결과 사랑의 감정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전생에서 공유한 수많은 생에 대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만들면서 제작진과 인연임을 깊이 느꼈다. 감사하다”고 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펜하이머’ ‘바비’ ‘아메리칸 픽션’ ‘추락의 해부’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바튼 아카데미’ ‘플라워 킬링 문’ ‘가여운 것들’ ‘존 오브 인터레스트’ 등 9개 작품과 작품상을 놓고 경쟁한다. 수상 여부를 떠나 송 감독이 데뷔작으로 크리스토퍼 놀런, 스티븐 스필버그 등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시상식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3월 10일 열린다. 영화는 한국에서 3월 중 개봉할 예정이다.
한편, ‘패스트 라이브즈’가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 연예매체 데드라인은 “‘패스트 라이브즈’의 감독 셀린 송이 오스카에서 여성 감독이자 첫 영화로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멕시코 출신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역시 이 영화에 대해 “지난 20년간 본 영화 중 최고의 장편 데뷔작”이라고 호평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