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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산지, 美 송환없이 석방된다

Posted June. 26, 2024 07:57,   

Updated June. 26, 202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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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자신이 설립한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에서 미국 정부 기밀문서 등을 대량으로 공개해 간첩 혐의로 기소됐던 줄리안 어산지(53·사진)가 미국으로 끌려가지 않고 10년 넘은 도피생활을 마무리하게 됐다. 미 법원에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5년 넘게 영국 교도소에서 복역한 것으로 죄값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 등은 24일 미 법무부 서류를 인용해 “어산지가 이틀 뒤 미국령 사이판의 법원에 출두해 유죄를 인정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해당 법원은 어산지에게 62개월형을 선고하면서, 2019년 4월부터 이달 23일까지의 영국 복역을 이미 징역을 산 것으로 인정해줄 예정이다. 이에 24일 영국 교도소에서 출소한 어산지는 사이판을 거쳐 곧장 석방돼 모국인 호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서부터 해킹에 능숙했던 어산지는 2006년 위키리크스를 설립하고 2010년 미 육군 첼시 매닝 일병이 빼낸 미 군사·외교 기밀문서 수십만 건을 게재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해당 문서엔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 당시 미군 전쟁범죄와 관타나모수용소 인권 침해 등 민감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같은해 매닝이 체포된 뒤 그 역시 붙잡힐 위기에 처하자, 2012년 어산지는 망명 허가를 내준 반미(反美)성향 에콰도르의 런던 주재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영국이 미국과 범조인 인도 조약을 체결한 탓에 대사관에서 한발짝도 나갈 수 없었던 그는 “우주선에서 사는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7년 가까이 대사관에 머물던 어산지는 에콰도르정부와도 사이가 나빠지며 2019년 결국 망명이 취소돼 갈곳을 잃었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1917 스파이방지법(Espionage Act of 1917)’ 위반과 간첩 활동 등 18개 혐의로 전격 기소하며 영국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어산지는 영국 교도소에 수감됐다.

곧장 미국으로 송환될 것으로 보였던 어산지는 영국 법원이 제동을 걸며 기나긴 법적 공방이 벌였다. 어산지 측이 “미국에 가면 175년의 징역형이 내려질 수 있다”며 소송을 제기하자, 영 법원이 “어산지에게 가혹하다”며 손을 들어준 것이다. 미국은 피고인이 반드시 법정에 출두해 유죄를 인정해야만 형을 집행할 수 있다. 5년 넘게 수감된 채 공방만 오고갔던 사건은 결국 미 법무부와 어산지 측의 합의로 일단락을 맺게 됐다.

일각에선 미 정부의 이번 결정이 “언론을 탄압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고려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서구사회에선 어산지 석방 요구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등이 어산지의 미국 송환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