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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돌아올수 있게 정부가 답 내놓을 차례”

“전공의 돌아올수 있게 정부가 답 내놓을 차례”

Posted July. 02, 2024 08:09,   

Updated July. 02, 202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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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져 소리치고 있는데 다들 팔짱을 끼고 구경하는 느낌입니다.”(김성주 중증환자단체연합회장)

“불안감을 갖게 해드린 점 너무 송구합니다. 의사는 환자를 지킬 겁니다.”(은영민 연세대 의대 소아과 교수)

올 2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시작된 의료 공백이 5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들은 무기한 휴진을 중단했지만 일부 대학병원에선 ‘자율적 휴진’을 진행하고 있어 환자 불안도 여전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어렵게 만난 의대 교수와 환자단체 대표는 “의사 대다수가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만큼 이제 정부가 답을 내놓아야 할 차례”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30일 식도암 4기 환자인 김 회장(62)은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연구동에서 은 교수(56)를 만나 서로의 입장을 공유하고 의료 공백 사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2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의대 교수와 환자단체 대표가 공개 석상에서 1 대 1로 만나 의료 공백 해법을 논의한 건 이번 사태가 발생한 후 처음이다.

연세대 의대 교수 비대위는 지난달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선언했지만 은 교수는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과는 환자를 절대 떠날 수 없다”며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김 회장은 “의료 현장을 지킨다면 환자는 의사 편”이라며 감사를 표한 뒤 “여전히 많은 환자가 의료진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을 갖고 있다. 이런 감정이 남아 있을 때 사태가 해결됐으면 한다”고 했다.

둘은 의대 2000명 증원보다 중요한 건 무너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은 교수는 “문제의 시작은 필수과가 여전히 1980년대 수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라며 “수가를 높여 밤새우며 중환자를 살려도 병원에선 왜 수익을 못 올렸냐고 한 소리 듣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도 “(2000명이란) 숫자가 본질이 아니고 필수의료, 공공의료를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한데 구체적인 로드맵은 하나도 없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김 회장과 은 교수는 또 의료 현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정부와 전공의가 이제라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회장은 “정부와 전공의 모두 조건 없이 지금이라도 무장해제하고 만났으면 좋겠다”며 “환자들도 기회가 된다면 전공의를 만나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은 교수도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선배로서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전공의 목소리를 정부가 들을 수 있는 협상 테이블이 열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회 청문회를 보면서 환자들은 고구마를 만 개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정치권에 130일 동안 뭘 했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김 회장은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13시간 넘게 열린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를 보면서 답답했던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여야 의원 24명이 똑같은 질문을 하면 정부는 그동안 했던 얘기를 되풀이했다”며 “환자 목소리가 배제되고 환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는 게 속상했다”고 말했다. 은 교수도 “의사들도 앞으로 나아가는 얘기가 없어 실망했다”고 동의했다.

● “정부 보여주기식 대책 효과 없어”

두 사람은 정부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내놓은 의료공백 대책이 현장에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 대표는 “보건복지부에서 비상진료체계에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느끼는 것과 너무 다르다”며 “각종 대책을 내놓는데 예산이나 인프라가 미리 준비돼 있던 것 같지 않다. 실질적이지 않아 나올 때마다 저희가 비판 성명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은 교수도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다”며 “낙후 지역 공중보건의를 차출하는데 그러면 지역 어르신이 편찮으실 때 누가 약을 처방하느냐. 상처난 곳을 지혈해야 하는데 주변만 닦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전공의 복귀를 위해 마련한 처우 개선 대책에 대해서도 “수련시스템 개선 태스크포스(TF)는 만들었는데 국가 투자와 시스템 개선은 아직 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어차피 죽을 환자란 말 듣고 충격”

김 회장은 은 교수에게 의대 교수들의 언행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의료공백 사태 이후 말기암 환자가 사망했을 때 한 의대 교수가 ‘죽을 만한 환자가 죽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죽을 만한 환자가 어디 있느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과거에는 더 이상 치료할 약이 없어도 항암제를 바꾸거나 방사선 치료로 바꾸거나 했다. 그러면 누구는 1년을 더 살고, 또 누구는 삶의 의지가 생겨 4∼5년도 살았는데 지금은 바로 호스피스로 가길 권유받고 있다”고 했다.

은 교수는 이에 대해 “해당 발언을 누가 어떤 의도로 한 건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며 “저도 가까운 사람이 암 투병 중이라 충분이 어떤 기분인지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최근 무슨 요일인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환자를 보고 있다”며 “교수도 사람이니 체력의 한계로 쓰러지는 사람이 나온다. 그렇다고 버티기 위해 진료량을 줄이면 환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 “의사-환자 해법 같이 찾자”

둘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의대 증원이 현재 왜곡된 의료 시스템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도 의견을 같이 했다. 김 회장은 “지금도 개원의들이 비급여로 먹고사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인데 개인적으로 수천 명 증원 이런 건 반대”라며 “필수의료에 어떻게 인원을 배분할 건지, 지역에 어떤 인프라를 만들 건지도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은 교수도 “지금도 소아과 의사가 늘고 있는데 문제는 이들이 전공을 살리지 않고 비급여 미용으로 가는 것”이라며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했다.

또 정부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전공의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은 교수는 “정부에게 바라는 두 가지는 전공의와 대면해 문제의 핵심을 꺼내 놓는 것, 그리고 의료를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안을 실무자들과 논의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회장도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은 많은 시간과 재원이 필요한만큼 정부도 더 의지를 보이고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은 앞으로 이 같은 대화가 더 활성화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은 교수는 “환자들이 힘들어하는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사와 환자가) 전체적으로 손잡고 정부에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했다. 김 회장도 “오늘 은 교수를 만나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어 좋았다”며 “전공의들에게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환자와 유지해야 할 신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지 고민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