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방통위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방통위 상임위원 임명안을 재가했다. 지난 26일 이상인 위원장 직무대행 겸 부위원장이 야당의 탄핵을 피해 자진사퇴하면서 ‘상임위원 0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지 5일 만이다. 최소 의결정족수 2인을 채운 방통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을 의결했고, 야당은 신임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이날 하루 방통위를 둘러싸고 숨 가쁘게 전개된 일들은 여야간 KBS와 MBC 주도권 다툼이막가는 수준임을 보여준다. 이 위원장과 김 상임위원은 임명장 수여식과 현충원 참배도 건너뛰고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을 1호 안건으로 서둘러 처리했다. 방통위 회의 운영규칙에 따라 전체 회의 안건은 부득이하고 긴급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48시간 전 상임위원들에 전달하고 24시간 전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 8월 12일과 31일 각각 임기가 끝나는 MBC와 KBS 이사 선임이 통상 절차를 생략해야 할 만큼 긴급한 안건일 리 없다. 야당의 탄핵안 표결에 앞서 공영방송 이사진을 여당에 유리하게 바꿔놓으려는 꼼수라 해야 할 것이다.

신임 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탄핵안을 제출하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 야당은 방통위가 상임위원 5명의 합의제 기구이므로 2인 체제로 안건을 처리한 것은 불법이어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방통위의 2인 체제 의결에 대해서는 법원이 부적절성을 지적하면서도 위법하다고 판결한 전례는 없다. 야당은 대안으로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무슨 수를 써서든 공영방송 주도권은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방통위 의결권을 둘러싼 여야 대치는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한상혁 전 위원장이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물러나지 않다가 결국 강제 면직된 후 김효재 대행체제를 거쳐 임명,탄핵, 대행 등을 반복하는 식으로 15개월 째 이어지고 있다. 이동관 위원장이 지난해 8월 임명된지 100일도 안돼 탄핵을 피해 자진사퇴했고, 후임으로 김홍일 위원장이 취임했지만 7개월을 버티다 사퇴했다. 지난해 8월 여야 추천 몫인 상임위원 3명의 임기가 끝났으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후임자 추천과 임명이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방통위 마비를 겨냥한 탄핵과 이에 맞서는 사퇴의 바보 놀음이 반복되고 있다. 공영방송을 노린 사생결단식 대결이 방송통신 정책은 물론이고 국정 전반을 파행으로 몰고 갈 조짐이다. 왜 방통위를 5인 체제로 정상화할 생각부터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