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메달 따 왔어요. 다음에는 금메달 따 오겠습니다.”
6일 오전 10시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에 있는 독립운동가 허석 지사(1857∼1920)의 순국 기적비(紀蹟碑) 앞. 파리 올림픽 은메달과 동메달을 양손에 쥔 한국 여자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21)가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허석 지사는 허미미의 현조(玄祖) 할아버지다.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일본인들의 조선인 이권 침탈 상황을 목격하면서 이에 분개해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고자 경북 지역에서 항일 격문을 붙이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세상을 떠난 뒤 60여 년이 지나서야 공적을 인정받아 1984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91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허미미는 이번 파리 올림픽 여자 유도 개인전 57㎏급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혼성단체전에도 출전해 남은 힘을 모두 보태며 동메달 하나를 추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림픽 일정을 모두 끝내고 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허미미는 이튿날 첫 일정으로 곧장 현조 할아버지 허석 지사의 순국 기적비를 찾았다.
허미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다. 중학교 때부터 전국구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며 일본 유도의 최대 유망주로 꼽혔던 허미미는 2021년 돌연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태극마크를 달고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건너온 허미미는 경북체육회 유도팀에 입단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독립운동가 허석 지사의 5대손임을 알게 됐다. 2022년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단 허미미는 올해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57㎏급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단숨에 한국 유도의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명민준 mmj8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