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대신 절에서 만나면… 이성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다르겠지요.”
10일 강원 양양 낙산사에서 만난 묘장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사진)은 왜 절에서 남녀 소개팅(‘나는 절로’)을 주선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절로’는 20, 30대 남녀 젊은이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재단 프로그램. 미혼 남녀의 만남을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 ‘나는 솔로’에서 이름을 빌렸다. 지난해 11월 시즌 1을 시작한 이후 조금씩 인기를 얻더니 9, 10일 낙산사에서 열린 시즌 5에는 20명 모집에 1501명이 신청해 남자 70.1 대 1, 여자 77.3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나는 절로’는 재단이 2013년부터 해오던 ‘만남 템플스테이’가 원조. 묘장 스님은 “당시는 템플스테이를 기반으로 이성 간의 만남을 가미했는데, 만남보다 템플스테이에 더 치중하다 보니 신청자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초기에는 참가자가 부족해 직원이 참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근근이 명맥만 잇던 만남 템플스테이는 지난해 8월 묘장 스님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환골탈태했다. 묘장 스님은 “정말 좋은 프로그램인데 그동안은 기존 관습과 생각에 얽매여 제대로 살리지 못한 면이 많았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잠시 중단됐던 프로그램을 지난해 다시 시작하면서 완전히 갈아엎어 보자고 한 것이 젊은이들의 니즈와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먼저 프로그램 개념을 템플스테이 중심에서 소개팅 중심으로 완전히 바꿨다. “만남 템플스테이 때 보니까 여성 참가자들이 풀메이크업에 정장, 하이힐을 신고 오더라고요. 그걸 오자마자 템플스테이 옷으로 갈아입히니 이성 간에 매력을 느끼겠습니까? 지금은 첫 3시간 정도는 입고 온 차림 그대로 서로를 볼 시간을 주지요. 템플스테이하러 온 게 아니라 소개팅하러 온 거잖아요? 하하하.”
절 일과에 맞췄던 취침 시간(오후 9시)도 오후 11시 반으로 늦췄다. 묘장 스님은 “멀리 절까지 온 피 끓는 젊은이들에게 밤 9시에 자라고 하면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며 “장소도 큰 영향을 주기에 시즌 1, 2 때는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했지만, 점차 계절에 맞춰 지방 사찰에서 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올 4월과 6월에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인천 강화 전등사와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에 낙산사에서 한 것도 여름, 휴가, 바다라는 매력을 더하기 위해서였다.
외국 언론에서 취재를 올 정도로 관심이 뜨거운 ‘나는 절로’는 참가자들에게 얼굴 공개 동의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참가를 꺼릴 것도 같은데 의외로 이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묘장 스님은 “우리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인데 워낙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다 보니 참가자들은 오히려 이를 검증의 한 단계로, 긍정적으로 여겼다”고 전했다. 자기 얼굴이 공개된다는 걸 알면 과거에 한 나쁜 짓을 숨기고 싶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참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만남의 장소가 절이라는 것도 서로에게 호감을 더하는 요소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절, 불교, 신앙 이런 요소들이 클럽이나 헌팅포차에서 만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서로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 같아요. 가볍게 놀려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사람을 만나려는 진정성을 보게 해주는 거죠. 어쩌면 세상이 한없이 가벼워진 탓에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요즘 젊은이들도 진지한 만남을 늘 원해 왔던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이번 낙산사 ‘나는 절로’에서는 20명 중 6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그런데 이들은 7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어떻게 뚫은 것일까. 묘장 스님은 “이성을 만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쓰는지로 선정한다”며 “신청서에 종교는 아예 쓰는 난이 없고, 외모와 직업도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절로’ 프로그램은 지난달 제13회 인구의 날 행사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개선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묘장 스님은 “‘나는 절로’가 떠서 그런지 요즘은 40∼50대, 심지어 ‘돌싱’ 쪽에서도 우리를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어 달라는 전화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며 “‘돌싱’까지는 아니지만 40대는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