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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모에 아이 맡기고 야근하는 사회 바람직한가

필리핀 이모에 아이 맡기고 야근하는 사회 바람직한가

Posted September. 09, 2024 07:35,   

Updated September. 09, 202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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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51년 전인 1973년 외국인 가사관리사(헬퍼) 제도를 도입했다. 가정에 입주해 보통 주 6일 근무하는 이들에겐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아 월 100만 원 안팎이면 고용할 수 있다. 저렴한 비용 덕분에 맞벌이 부부들의 이용률이 높다고 한다.<br><br> 그렇다고 홍콩의 맞벌이 부부들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선호한다는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가 최근 홍콩 현지에서 만난 켈빈 우 씨(35)는 외국인 헬퍼를 고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로펌에 다니는 아내가 출산 후 육아를 위해 회사에 재택근무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께 신세를 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우 씨 부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지 대신 돌봐줄 사람은 아니었다. 돌봄 서비스 이용 가격이 아무리 낮다 해도 가족도 아닌 낯선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br><br> 홍콩의 이런 사례를 보면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가 오히려 자녀 양육의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고 장시간 근로를 정당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렴한 비용에 돌봄을 외주화할 수 있다면 회사는 직원들의 육아 참여를 장려할 이유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굳이 재택근무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등의 유연근무를 허용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br><br> 실제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는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명확했다. 홍콩에선 1990년대 중산층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고용이 10년 새 3배로 증가했다. 그 결과 5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15%포인트 이상 늘었다. 하지만 2012년 1.28명이었던 홍콩의 합계출산율은 2020년 0.88명으로 1명 밑으로 떨어진 뒤 지난해 역대 최저인 0.75명까지 추락했다. 합계출산율 세계 꼴찌인 한국(0.72명)과 큰 차이가 없다.<br><br> 홍콩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일찌감치 도입한 싱가포르(0.97명)와 대만(0.87명) 등도 지난해 역대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한국은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것 같다.<br><br> 인구 소멸의 위기를 함께 맞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이 있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의 말처럼 영감(inspiration)이 아닌 땀(perspiration)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해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전히 장시간 근로가 미덕으로 여겨지고, 또한 회사 내 지위와 승진과도 연결된다.<br><br> 한국도 불필요하게 너무 오래 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노동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연간 1901시간으로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칠레 다음으로 길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49.4달러로 1위인 아일랜드(155.5달러)의 32.8% 수준에 불과했다.<br><br>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자녀를 맡기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가.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과 비용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본질적인 지향점을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서구 선진국들처럼 ‘가짜 노동’을 멈추고 자녀에게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