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이 뉴욕에서 썼던 작업실 공간을 그대로 복원한 공간 ‘메모라빌리아’.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는 이곳은 평소에는 관객이 들어가 볼 수 없다. 그런데 12일 관객 8명이 인솔자를 따라 브라운관 모니터가 쌓인 수장고는 물론이고 큐레이터의 사무실과 관장실까지 들어갔다. 이들이 아무나 볼 수 없었던 미술관의 숨은 공간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 미술가 우메다 테츠야의 퍼포먼스 작품 ‘물에 관한 산책’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우메다의 ‘물에 관한 산책’은 약 50분간 미술관 내외부를 둘러보며 진행된다. 곳곳에서 작가의 설치 작품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연기자들이 말 대신 몸짓으로 미술관의 흥미로운 공간을 비추며 관객이 스스로 보기를 유도한다. 투어는 매주 금, 토요일 오후 2시부터 20분 간격으로 총 6회 진행된다. 시간차를 두고 출발했던 팀들이 서로 만나기도 한다.
백남준아트센터가 국내외 작가에게 의뢰한 신작을 선보이는 ‘NJP 커미션: 숨결 노래’전이 12일 개막했다. NJP 커미션은 백남준아트센터가 처음 선보이는 형식의 전시로 현대 미술의 중요 의제를 다루는 중견 작가들의 신작을 제작하고 심화한 예술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우메다를 비롯해 앤 덕희 조던, 에글레 부드비티테, 최찬숙 작가가 참여했다.
큐레이팅 형식도 독특하다. 미술관 소속 큐레이터 2명과 외부 큐레이터 2명이 협력해 기획했다. 미술관의 이채영 학예연구팀장, 조권진 학예사와 독립 큐레이터 이성민, 최희승이 협업했는데 여러 차례 회의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하는 조던은 백남준에게 영감을 얻은 신작 ‘앞으로 다가올 모든 것을 환영한다’를 선보인다. 작품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과 피아노 퍼포먼스 사운드가 삽입된 피아노, 구형 컴퓨터, 실리콘 손, 바닥에 물이 담긴 큰 수조로 구성된다. 관객이 다가오면 진자가 움직여 손이 피아노로 다가가 연주가 시작된다. 정교하게 설계된 센서로 작동되는 작품이지만, 사람이 참여함으로써 물에 비친 기계의 잔상이 흔들리고 기계의 언어를 해체한다는 은유를 담는다.
부드비티테(리투아니아)는 커다란 트램펄린 3개를 연결해 설치했다. 평소에는 관객이 앉아서 쉴 수 있다. 퍼포먼스 워크숍 ‘실려서 가고, 뒤에서 끌려가는’도 이곳에서 열린다. ‘끌기’라는 행위에 내포된 폭력은 물론이고 배려와 보살핌 같은 복합적인 의미를 탐구한다. 최찬숙은 미국 애리조나 지역을 횡단하며 만난 이라크전 참전 용사와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인 아파치 부족의 연대를 다룬 에세이 필름 ‘더 텀블 올 댓 폴’과 바람에 굴러다니며 씨앗을 퍼뜨리는 회전초의 삶을 그린 ‘더 텀블’을 공개한다.
전시 제목 ‘숨결 노래’는 작가 4명이 각기 다른 톤과 목소리로 만들어 낸 노래를 상상하고, 그 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 불규칙한 리듬이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어우러지고 함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2월 15일까지.
김민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