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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개입 없이 50개 변수로 의사數 추계”…핵심은 의정 신뢰

 “정부 개입 없이 50개 변수로 의사數 추계”…핵심은 의정 신뢰

Posted October. 21, 2024 08:15,   

Updated October. 21, 202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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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동아일보가 네덜란드와 일본을 찾아 의사 추계 및 양성 시스템을 취재했다. 네덜란드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 기구(ACMMP)를, 일본은 후생노동성 산하에 의사 수급 분과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네덜란드 ACMMP는 정부 예산을 지원받고 일본 의사 수급 분과위는 정부 산하에 설치됐지만, 일절 정부의 개입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네덜란드 ACMMP는 의사 2명을 포함해 수학, 노동, 교육, 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의료 직역별 전문가 140여명과 협업해 3년마다 적정 의료 인력을 추계한다. 신규 배출 인력, 의사 양성 기간, 평균 근로 시간 등 기본 변수뿐만 아니라 감염병 발생 가능성,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등 미래 변수까지 모두 50가지 데이터를 활용한다고 한다. 2년 이상 데이터만 수집할 만큼 정밀한 추계에 공을 들인다. ACMMP는 ‘오래 계획하고 자주 추계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정부와 의료계는 그 결과를 존중한다.

2008년부터 의대 정원을 늘려온 일본은 투명한 논의와 점진적 증원을 통해 한국과 같은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있었다. 의사 13명을 포함해 모두 22명으로 구성된 의사 수급 분과위는 매 회의마다 발언자 명단과 주요 발언이 담긴 회의록을 전부 공개한다. 이렇게 도출된 객관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17년간 의대 정원 1778명을 점진적으로 늘려 올해 9403명이 됐다.

의사 수급 추계에 참여한 네덜란드와 일본의 전문가들은 의대 증원 규모의 결정 과정과 그 근거를 투명하게 밝혀 신뢰를 쌓지 않으면 의료계와 동의를 얻을 수도,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2월 일본이 17년간 늘린 의대 정원보다 많은 2000명을 깜짝 발표하면서 정책적 판단에 대한 근거는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의정현안협의체와 각 의대별 정원배정위원회 회의록도 남아있지 않았다. 뒤늦게 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지만 의정 간 신뢰가 깨진 탓에 의료계는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정부가 의대 증원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꿴 탓에 이젠 의료 개혁 자체가 동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