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해치고 환경에도 도움이 안 되는 전기차 의무화를 끝내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하자마자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액 공제 제도를 폐지할 뜻을 거듭 밝혔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공약 실현을 위해 관세를 무기화하겠다며 집권 1기 당시 한국 및 중국산 세탁기에 50%의 관세를 부과했던 점도 거론했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의 ‘프렌드쇼어링(동맹국 투자)’ 장려 정책을 믿고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국내 기업의 피해 또한 가시화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혼란과 국정 공백 장기화에 직면한 한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각종 압박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전기차 의무화 종료”에 韓기업 우려
트럼프 당선인은 8일 NBC방송 인터뷰에서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전기차 의무화를 종료할 것”이라며 “터무니없이 많은 환경 규제를 끝내겠다”고 밝혔다.
친(親)환경을 중시한 바이든 대통령은 2030년까지 미국 내 신차 판매의 50%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며 북미산 전기차를 구매할 때 최대 7500달러(약 105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반면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유세 과정에서 IRA를 ‘녹색 사기’라고 혹평했다.
이에 9일 블룸버그통신은 전기차 업계의 경쟁이 격화하는 와중에 전기차에 부정적인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으로 한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가 현재 진행 중인 미국 공장 건설을 늦추거나 일시 중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총 540억 달러(약 77조1600억 원)에 달하는 한국의 투자가 위협받고 있다는 취지다. 앞서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미국에 최소 15개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고율 관세 공약을 두고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경제 외 다른 것을 얻기 위해서도 매우 강력한 도구”라고 자평했다. 집권 1기 당시 한국과 중국산 세탁기에 50%의 관세를 부과해 수천 개의 일자리를 지켜냈다고도 했다.
관세 부과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는 “중국에 관세를 부과해도 그들은 우리와 게임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상대방이 어지간해서는 미국에 보복 관세로 맞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란 자신감을 보인 셈이다.
유럽 주요국에 대해서도 “그들은 미국산 자동차와 농산물을 수입하지 않는데 미국은 그들을 방어하는 ‘이중고(double whammy)’에 처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하고 미국산 상품 수입을 늘리지 않으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탈퇴하겠다는 위협도 거듭 가했다.
● “의회 난입 가담자 첫날 사면”
트럼프 당선인은 2020년 자신의 대선 패배에 불복하며 2021년 1월 6일 워싱턴 의회에 난입한 일부 극렬 지지자를 사면할 뜻도 밝혔다. 그는 의회 난입으로 수감된 지지층이 “더럽고 역겨운 곳에 갇혀 있었다. 지옥에 살고 있다”고 동정했다. 이어 “취임 첫날 신속히 행동하겠다”며 사면 의지를 강조했다.
수정헌법 14조가 규정한 출생시민권제를 폐지할 뜻도 밝혔다. 미 시민권 취득을 목표로 한 이른바 ‘원정 출산’을 금지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행정명령으로 헌법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는 바이든 대통령, 자신에 대한 형사 기소를 주도한 잭 스미스 연방 특별검사, 집권 1기 당시 자신의 금리 인하 요구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한 정치 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적에 대한) 응징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성공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