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중앙은행)이 24일 단기 정책금리(기준금리)를 연 0.25%에서 0.5%로 올렸다. 지난해 7월(0∼0.1%→0.25%) 이후 6개월 만의 추가 인상이다.
일본은행이 이날 금융정책 결정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결정하면서 일본 기준금리는 17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가 안정 목적과 함께 2월 초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있다. 금리를 올려 엔저 기조가 꺾이면 일본의 대미 수출 경쟁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일본이 대미 무역 흑자 규모 축소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
일본의 초저금리는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을 높여 왔다. 이는 일본 수출 가격 경쟁력을 향상시켜 대미 무역 흑자의 주요인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수지 균형을 강조하며 고관세 부과 등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을 펴고 있는 마당에 일본이 지금처럼 대미 무역 흑자를 이어가면 미국이 통상 압력을 가하고 ‘제2 플라자 합의’(인위적 엔화 절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로이터에 “일본의 대미 무역 흑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을 막아야 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에게 압박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중국, 멕시코, 베트남,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크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7위 규모다.
일본에서는 지난해부터 임금과 물가가 함께 오르는, 이른바 ‘경제 선순환’이 시작돼 금리를 올릴 ‘경제 체력’이 뒷받침되고 있다. 증시가 활황을 보이고 경기가 회복되는 가운데, 낮은 기준금리가 물가를 자극하고 엔저 현상을 부추기는 만큼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일본 기업의 지난해 평균 임금 인상률은 4.1%로 1999년 이후 25년 만에 최고치였다. 지난해 일본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5% 올라 2023년(3.1%)에 이어 일본은행 목표치(2%)를 넘었다.
선진국 중 마지막까지 금융완화 정책을 고집했던 일본은 지난해 3월 기준금리를 ―0.1%에서 0∼0.1%로 올려 8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폐기했다. 최근 1년여간 3차례 금리를 올리면서 일본은 오랜 기간 유지했던 비정상적 금융완화 정책인 ‘아베노믹스’에서 벗어나 ‘금리 있는 세계’에 본격 진입하게 됐다.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일본은행 총재는 “경제가 완만하게 회복되고 기업 수익이 개선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도 임금 인상을 실시하겠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금리 인상 배경을 밝혔다. 우에다 총재는 현재 일본 금리가 “극히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금리를 계속 인상할 뜻을 내비쳤다.
한편, 이날 한국 금융당국은 일본 금리 인상 직후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일본은행 금리 인상 직후 미국 고용지표 악화가 겹치며 시장 충격이 발생한 만큼 향후 대외 여건 변화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이상훈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