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인데 밥은 제가 당연히 사야죠. 지금처럼 선의의 경쟁을 계속 하면서 좋은 성적 거두고 싶어요.”
‘쇼트트랙 여왕’ 최민정(27)이 돌아왔다. 주 종목인 여자 1500m 금메달은 후배 김길리(21)에게 내줬지만 1년 공백을 뛰어넘어 2025 하얼빈 겨울 아시안게임 한국 선수단 첫 3관왕에 올랐다.
최민정은 9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선에서 1분29초637의 아시안게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루 전인 8일 혼성 계주 2000m와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땄던 최민정은 3관왕에 오르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겨울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 선수가 3관왕에 오른 건 최민정이 처음이다.
2018 평창 겨울 올림픽과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1500m 2연패를 달성하며 쇼트트랙 장거리 최강자로 군림하던 최민정은 2023년 세계선수권을 마지막으로 잠시 태극마크를 내려놨다. 한 시즌 동안 정비의 시간을 가진 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을 준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최민정이 떠난 사이 빈자리는 ‘차세대 에이스’ 김길리가 채웠다. 김길리는 2023∼2024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투어(옛 월드컵)에서 여자부 종합 1위에 오르며 크리스털 글로브를 받았다. 8일 열린 이번 대회 1500m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장거리 최강자로 입지를 단단히 다졌다. 반면 최민정은 이 종목에서 4위에 그쳤다.
하지만 아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최민정은 1500m에 이어 열린 여자 500m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이 종목 금메달을 따냈다. 500m는 한국이 스프린트 능력이 좋은 중국 선수들에게 전통적으로 밀리던 취약 종목이다. 하지만 최민정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데 이어 김길리와 이소연이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며 시상식 때 태극기 세 개가 나란히 걸리는 장관을 연출했다. 최민정은 500m 예선에서 43초321의 기록으로 판커신(중국)이 2017 삿포로 대회에서 세웠던 아시안게임 기록(43초371)을 8년 만에 경신한 데 이어 결선에서는 42초885로 기록을 더 줄였다.
9일 여자 1000m 준결선에서도 최민정은 1분29초835의 기록으로 심석희가 삿포로 대회 때 세운 아시안게임 기록(1분30초376)을 깼다. 그리고 1000m 결선에서 1분29초637의 아시안게임 기록을 다시 썼다. 최민정은 “이번 대회도 사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을 향한 과정이다. 이제 밀라노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걸 느낀다. 밀라노까지 계획한 것들을 차근차근 이루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런 최민정에게 김길리는 좋은 후배이자 경쟁자다. 최민정은 “1500m는 제 주 종목이기 때문에 당연히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1000m는 최근에 계속 성적이 좋아 자신감이 생겼다. 또 500m도 계속 도전하고 있는 종목”이라며 “밀라노에서는 어느 종목 하나 놓치지 않고 (메달) 가능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싶다. 길리와 지금처럼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함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최민정을 꼽은 김길리는 “(최)민정 언니는 친한 언니이자 존경하는 선수다. 처음 국가대표가 됐을 때 적응도 안 되고 많이 힘들었는데 민정 언니가 많이 도와줘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에도 최민정은 김길리에게 ‘밥 잘 사주는 언니’다.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마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14일부터 밀라노에서 열리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투어 6차 대회에 출전한다.
임보미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