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가 이곳에서 폭발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도 핵으로 맞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22일(현지 시간) 러시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이어지는 리투아니아 국경 도시 니다에서 만난 로마 씨(40)는 “발트해가 신(新)냉전의 최전선이 되면서 국경이 막혔다”고 토로했다. 러시아는 이곳에서 불과 90km 떨어진 칼리닌그라드에 핵무기를 배치했다. 러시아는 29, 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주요 의제인 스웨덴,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현실화되면 핵미사일을 추가 배치하겠다고 28일 위협했다.
발트해로 이어지는 해안이 아름다운 인구 2000여 명의 소도시 니다는 휴양도시로 유명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가 핵위협 수위를 한층 높이면서 관광객이 끊겼다. 러시아는 지난달 4일 칼리닌그라드에서 핵탄두를 탑재한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시뮬레이션을 벌였다. 전동킥보드 대여업을 하는 지역 주민 노스 씨(21)는 22일 “예년에는 여름철 손님이 하루 100명이 넘었지만 오늘 5명도 안 된다. 당장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곳에 누가 오려 하겠나”라고 했다. 러시아의 핵위협이 현실화되자 칼리닌그라드로 연결되는 국경검문소 도로 진입이 차단됐다.
나토 정상회의를 이틀 앞둔 27일 러시아는 핵공격 능력을 과시했다. 이날 핵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전략폭격기 Tu-22M3에서 발사한 순항미사일로 1000명의 시민이 몰려 있던 우크라이나 중부 크레멘추크시 쇼핑센터를 공격해 최소 16명이 사망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27일 “발트해와 동유럽 일대에서 러시아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병력을 현재 4만 명 규모에서 7.5배로 늘어난 30만 명 이상으로 증강하겠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노골적 핵위협이 핵전쟁 문턱을 낮춰 핵공포를 확산시키고 나토가 병력·군비 증강으로 맞서는 ‘신(新)핵냉전’ 시대가 온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핵무기와 군비 지출을 억제하던 탈냉전 시대에 역사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종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