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신호가 들어왔습니다. 앞을 보시고 천천히 이동해 주세요.”
29일 오후 일본 도쿄 시부야 스크램블교차로. 일본에서 핼러윈에 가장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곳에 오후 6시가 되자 지붕에 전광판이 설치된 경찰차가 교차로에 정차했다. ‘DJ(디스크자키) 폴리스’로 불리는 질서 유지 담당 경찰이 차 지붕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속사포처럼 행인들에게 호소했다.
이태원 참사가 터진 같은 날 비슷한 시간 도쿄 시부야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3년 만에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인파 수십만 명이 몰렸다. 하지만 별다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고 방지를 위해 경찰이 실시간으로 질서를 유도했고 지방자치단체는 1개월여 전부터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미국 뉴욕에서는 핼러윈 기간 중 거리 100여 곳에서 교통을 통제하며 경찰 배치를 대폭 확대했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에서는 사람이 몰리면 언제 어떤 사건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염두에 두고 철저한 질서 유지와 강력한 통제를 벌이고 있다.
○ 日 ‘DJ 폴리스’가 수십만 인파 질서 유지
시부야에 해가 지고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교차로에 ‘DJ 폴리스’가 등장했다. 빨간 불에 한 행인이 건너려고 할 때 DJ 폴리스가 곧바로 “아직 빨간불입니다. 돌아가세요”라고 외치자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파란 신호등이 들어오자 DJ폴리스는 “혼잡 사고 방지를 위해 교차로에 서 있지 마세요. 천천히 이동해 주세요”라는 안내를 빨간 신호등이 들어올 때까지 반복했다.
DJ 폴리스는 2013년 6월 브라질월드컵 예선전 당시 시부야에 인파가 몰리자 한 경찰이 경찰차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클럽 DJ처럼 재치 있는 말투로 질서를 유도한 게 시초다. 반응이 좋아 경시청이 아예 DJ 폴리스 전담 조직을 설치해 2020 도쿄 올림픽 등 주요 스포츠 행사, 이벤트 때 활용하고 있다.
29일 시부야 일대는 어느 때보다 엄중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일본 경시청은 경찰 350명을 동원해 파란 신호등이 들어올 때마다 경찰통제선(폴리스라인) 비닐 끈으로 횡단보도에서 건너는 사람들이 엉키지 않도록 유도했다. 시부야구는 구청 직원과 민간 경비업체 100명을 동원해 질서 유지에 나섰다.
시부야는 2018년 핼러윈 때 흥분한 젊은이 10여 명이 트럭을 뒤집는 난동을 부리고 지난해에는 핼러윈 분장을 한 남성이 전철에서 방화를 하는 사건이 발생해 핼러윈에 대한 경계감이 강하다. 하세베 겐 시부야구청장은 “일률적으로 오지 말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바보 같은 소동은 벌이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부야구는 1개월 전부터 거리 곳곳에 ‘매너를 지키는 사람이 시부야를 지키는 사람’ ‘핼러윈의 시부야라는 말이 좋은 의미가 될 때까지’ 등의 포스터 500장을 내걸었다. 28일부터 11월 1일은 구 조례로 ‘길거리 음주 금지 기간’으로 지정해 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을 단속했다.
○ 美-유럽 “3개월∼1년 반 전 대비 계획 세워야”
미국은 핼러윈 기간 교통사고가 평소보다 43% 증가하는 등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면서 최근 들어 교통 금지구역을 지정하는 도시가 늘었다.
뉴욕시 이다니스 로드리게스 교통장관은 핼러윈 기간 100곳의 거리에 교통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뉴욕에서는 2017년 핼러윈 기간 한 트럭이 자전거 도로를 덮쳐 8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퍼레이드 등 행사 시 경찰 배치를 대폭 확대했다.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스버그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핼러윈 기간 2마일(약 3.2km) 구간에 자동차 진입을 차단했으며 코네티컷, 콜로라도, 메사추세츠 등도 도심지 일부 거리에 차량 도로를 폐쇄했다.
미국 법무부는 대규모 행사는 12∼18개월 전부터 경비 계획을 세우도록 권고한다. 미국에서는 미 방화협회가 마련한 ‘인명 안전코드(NFPA 101)’가 보편적인 안전 기준으로 여겨진다. 당초 화재 피난 매뉴얼로 만들어졌지만 대규모 군중이 밀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압사 사고 등에 대한 대비 규정도 포함됐다. 지난해 개정판에는 △특정 규모 이상의 행사장에서는 관중 밀도가 0.65m²당 1명 이하로 유지돼야 하고 △사고 발생 시 군중이 분산 대피할 수 있도록 출구를 적절히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프랑스 정부는 2015, 2016년 빈발한 테러 사건으로 안전 강화 필요성이 커지자 2017년 ‘문화 행사 안전 및 보안 관리’ 지침을 마련했다. 행사 주최자는 군중이 많이 모일 가능성이 높으면 행사 3, 4개월 전부터 지방 당국과 논의해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하고 있다.
도쿄=이상훈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