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일본 효고(兵庫)현 아카시(明石)시에서 불꽃놀이에 몰린 인파가 넘쳐 11명이 압사 사고로 숨지는 참사를 겪은 일본은 2002년 효고지방경찰청이 107쪽 분량의 ‘혼잡사고 방지 매뉴얼’을 제작했다. 끔찍한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철저한 반성하에 사고 책임을 진 조직이 생생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만든 것이라 사실상 일본 전역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된다.
매뉴얼에는 △혼잡한 곳은 일방통행이 기본 △출구는 입구보다 넓게 설치 △사람 흐름은 되도록 직선으로 유도할 것 △통로에 통행에 방해되는 장애물 설치 금지 등이 포함됐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은 내용이다. 일본 안전 전문가인 가와구치 도시히로(川口壽裕) 간사이대 사회안전학부 교수는 본보 인터뷰에서 “혼잡스러운 곳에서는 작은 행동 하나가 큰 사고를 일으킨다”며 “일방통행 원칙 하나만 지켜도 혼잡도를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군중 밀집한 곳은 오픈스페이스가 원칙”
매뉴얼에 따르면 사람이 모이는 공간은 원칙적으로 ‘열린 공간(오픈 스페이스)’으로 하도록 했다. 동선은 되도록 직선으로 만들고, 어쩔 수 없이 휘어지더라도 직선에 가깝게 각을 최소화하라고 조언했다.
“입구와 출구를 다르게 하되, 출구를 입구보다 넓게 해야 인파 흐름이 막히지 않는다. 경사가 있을 경우 계단이 없어야 하고, 설사 있더라도 계단 폭이 좁으면 위험하다”고 매뉴얼은 지적했다. 특히 “통로는 일방통행으로 사람이 엉키지 않게 하라”고 정했다. 일방통행이 안 되면 중앙분리대를 설치하거나 경비원 등이 인간 띠를 만들어 분리하도록 정했다. 멈춰 서지 않도록 계속 주의를 주고 사진, 동영상을 찍기 위해 길에 멈춰 서는 사람은 발견 즉시 경고를 해 걷도록 유도하라고 했다.
○ “출구가 입구보다 넓어야 흐름 막혀”
일본 매뉴얼은 “가까운 거리라도 지름길 대신 빙 돌아가게 동선을 짜라”고 권고했다. 동선이 짧으면 한꺼번에 인파가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잡 정보는 최대한 많이 전달하되 되도록 쉬운 용어를 쓰도록 했다. 지식수준, 학력 등이 제각각인 걸 감안해 경찰용어, 전문용어, 동음이의어, 한자어 등은 피하도록 했다. ‘습득물’은 주운 물건, ‘유실물’은 잃어버린 물건 등으로 설명하는 게 원칙이다. 안내방송은 45글자 이내의 짧은 단문으로 반복하고 단어 사이는 1초, 문장과 문장은 2초의 간격을 두고 방송하라는 구체적인 조언까지 담겼다.
1989년 영국 프로축구 리버풀 축구팬 96명이 압사한 ‘힐즈버러의 비극’을 겪은 영국은 정부가 법에 따라 행사의 모든 사업체에 대해 ‘건강 및 안전 정책’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주최자는 현장에서 △현장 입장(입구, 대기공간) △군중의 현장 순환(중앙 홀과 주변 지역) △현장 이탈(출구 너비) 등 3단계로 나눠 군중 통제를 관리해야 한다.
도쿄=이상훈 / 파리=조은아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