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신용평가기관들은 하이닉스의 신용평가 등급을 정크본드 기준보다 낮은 수준으로 낮췄으며 하이닉스 주식은 담뱃값보다도 싼 주식이 돼 버렸다. 그동안 저금리로 돈이 갈 곳이 없어서 증시가 유동성 장세를 보일 것이라던 예상은 깨지고 금융기관들의 주가도 폭락해 주가지수가 한달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채권은행장들은 지난달 31일 함께 모여 채무 재조정을 논의하자던 약속을 연기한 채, 하이닉스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재고하고 있다. 여기에 신임 주한 미국대사와 미국 상무부는 한국 정부가 하이닉스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예의 주시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제 하이닉스 문제는 개별 기업의 차원을 넘어서 국민경제 전체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나아가 처리 방법에 따라 통상마찰은 물론 한국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한 방향성과 시장경제 실천의지를 보여주는 국가 신인도와 직결되는 중대사로 등장했다.
최근 들어 경제부총리를 위시한 재정경제부 관리들은 하이닉스에 대해 정부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채권단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해 법정관리로 가더라도 감수하겠다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을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은 존재한다. 빅딜 추진과정,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채권은행 협의회의 의사결정 과정 등은 비록 책임여부는 남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들로 치고, 앞으로 하이닉스로 인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정부는 시장경제 원리하에 규율이 바로 서도록 다음 몇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우선 채권자인 금융기관들(특히 주채권은행)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이닉스를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시중에서 하이닉스가 ‘밑빠진 독’으로 통하는 이유는 두 달 전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발행을 통해 1조6000억원을 조성한 기업이 어째서 한 달도 안된 7월 말 기준으로 현금 잔액이 1040억원밖에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채무자인 하이닉스가 의뢰한 미국의 투자은행 살로먼스미스바니의 분석만 믿고 수조원의 돈을 빌려주고 또다시 원리금 연장이나 출자전환을 해주는 것은 시장 원리와 규율에 맞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채권은행들은 자신들의 사활을 걸고 하이닉스 해외현지법인을 포함한 일체의 유형 무형의 경영행태와 재무상태를 철저히 실사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하이닉스를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둘째, 국내 기업 관련 정책이 해외 채권단을 포함한 채권기관들의 이해 상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형평성이나 집행 효율성의 하자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미 해외채권단들은 하이닉스가 계열사 분리 때 약속한 중도상환 가능 조항을 악용해 9월 14일 발효될 기업구조조정특별법에서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고, 투신사들도 법원의 판결을 이유로 반발하는 등 국내 채권금융기관들도 손실부담 원칙으로 갈등을 빚고 있지만 정부가 당사자들의 이해 관계를 조정할 능력이나 권한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시장원리에 따라 채권단 스스로 분담 원칙을 정해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셋째, 하이닉스를 철저히 실사한 결과, 생산능력과 기술경쟁력은 있지만 재무구조상의 문제만으로 현재의 위기가 왔다면 살리되, 어떤 방법으로 재무조정을 할 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꾸어준 돈을 받기 위해 돈을 더 빌려줘도 현 시점에서의 추가지원액의 실질순현가가 마이너스로 나온다면 당연히 법정관리로 소신 있게 넘길 수 있도록 채권금융기관들에 결정권을 넘겨야 한다.
다만 이 경우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은 예금보험공사와 약정한 양해각서를 철저히 이행토록 함으로써 개별 금융기관들이 최선의 독자적인 판단을 하게 하는 것이 시장원리이고 그것이 통상압력과 기업구조조정과 관련된 국가신인도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임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권영준(경희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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