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 골절과 오른팔 신경 손상.
기타 연주자에겐 거의 사망 선고였다. 뇌에서 떠올린 즉흥 악상을 빠른 손가락 움직임으로 표현해야 하는 재즈 기타리스트에겐 더더욱 그랬다.
마이크 스턴(64).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 자코 패스토리어스와 함께 활동했으며 록과 재즈를 넘나들며 재즈 퓨전의 일가를 일군 세계적 기타 거장이다.
지난해 7월, 스턴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 근처에서 길을 건너다 바닥에 널린 공사장의 자재를 피하지 못하고 크게 걸려 넘어진 것이다. 양 팔꿈치로 땅을 짚는 바람에 양쪽 어깨까지 골절됐다. 응급실로 실려 갔을 때 그가 의료진에게 처음 물은 것은 이것이었다. “나는 기타리스트다. 손은 괜찮은가.” 며칠 뒤 오른팔 신경 전반에 치명적 손상이 발견됐다.
대수술. 양팔 뼈에 나사못으로 금속교정기를 박았다. 어쩌면 기타란 것을 영원히 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음악은 그의 전부였으므로.
의사의 헌신적 치료와 스턴의 열정적 재활 훈련은 사고 두 달 반 만에 그의 품에 기타를 돌려줬다. 문제는 있었다. 손가락 끝에 힘이 전혀 없어 픽(pick·손에 쥐고 기타를 퉁기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자꾸만 미끄러져 떨어졌다. 가발 고정용 풀을 손에 발랐다. 픽에는 양면테이프를 붙였다. 비로소 픽이 고정됐지만 한 음 한 음 연주할 때마다 고통이 왔다.
연주가 가능해지자 그는 동료 음악가들을 스튜디오로 불러들였다. 데니스 체임버스, 빅터 우튼, 랜디 브레커, 데이브 웨클 같은 유명 연주자들이 반신반의하며 그를 찾아왔다. 최근 발표된 그의 솔로 17집 ‘Trip’은 그렇게 완성됐다. ‘Trip’엔 여행 말고 ‘발을 헛디딤’이란 사전적 의미도 있다. ‘Screws’(나사못) ‘Scotch Tape and Glue’(스카치테이프와 풀)란 곡도 담았다.
22일 경기 가평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에서 스턴의 피날레 공연을 본 관객들 대다수는 이런 사정을 알지 못했다. 그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무대를 누비며 폭발적인 연주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오른손 안쪽엔 테이프와 풀로 고정된 픽이 들려 있었다. 기타도 다른 이가 들어 올려줘야 어깨에 둘러멜 수 있다.
공연 전 만난 스턴은 기자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손마디가 모두 직각으로 곱은 채 굳어 있었다. 악수를 주저하자 밝은 웃음이 돌아왔다. “괜찮아요!”
스턴은 사고 이후 일상이 바뀌었다. 종일을 재활에 투자한다. 물리치료, 수영, 스트레칭을 반복한다. 남는 시간은 모조리 연주와 작곡에 쏟는다. 우울증이 온 적은 없냐고 물었다. “내 삶은 늘 우울했죠. 약물에 빠졌었고 그걸로 친구도 잃었고, 아내는 유방암 투병을 했어요. 그래도 음악이 있잖아요.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 고통도, 자신도 잊어버리잖아요.”
그는 부족한 실력을 자책하며 우울증에 빠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고 했다. “연습해. 2시간만 해봐. 우울해지는 건 그 다음에 해.”
그는 “음악은 꽃과 같다”고 했다. “열정을 쏟아붓고 기다리면 내 안에서 뭔가 아름다운 게 피어나는 걸 느껴요.”
기자와 헤어지며 그가 환한 미소로 곱아버린 오른손을 다시 내밀었다. “세상 누구도 뺏어갈 수 없어요.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가평=임희윤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