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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연금의 정치학

Posted June. 02, 200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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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지난달 22일 북한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자 일본정가에선 고이즈미씨는 운이 억세게 좋거나, 정치단수가 높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 나돌았다. 여론의 관심을 북-일 정상회담으로 돌려 자신의 국민연금 미가입 스캔들을 은근슬쩍 잠재웠기 때문이다. 정부 2인자인 관방장관과 제1야당 대표가 연금 미납 사실이 드러나 불명예 퇴진한 터라 고이즈미 총리의 위기탈출 행보는 정적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연금 파문은 일본 국회가 보험료는 높이고 급여액은 낮추는 연금개혁법을 심의하면서 시작됐다. 일본의 노후연금은 직장인 대상의 후생연금과 자영업자(국회의원 포함)가 가입하는 국민연금의 두 종류다. 출산율 저하와 평균수명 연장으로 보험료를 받는 사람은 늘어나고 내야할 사람은 줄어들면서 연금재정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애써 연금을 내봐야 늙어서 받기 힘들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미납률은 40%에 육박한다. 연금제도를 고치겠다는 정치인까지 미가입한 사실이 밝혀지자 국민들의 연금 불신은 정치권을 향한 성토로 번졌다.

한국에서도 국민연금관리공단과 네티즌간의 연금논쟁이 치열하다. 연금문제의 근본원인이 노인인구 증가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는 두 나라가 비슷하다. 한국에선 경기침체까지 겹쳐 연금을 붓기가 더 힘들어졌다. 일본은 연금지급액이 급여의 50%를 넘느냐, 못 넘느냐가 쟁점이지만 한국은 연금이 바닥날 것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연금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현재 110조원을 넘는 기금이 2046년에는 0원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국정계의 주도세력은 언론, 사법, 교육 등 분야별로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개혁의 절박성을 강조한다. 국민연금처럼 화끈하지 않은 분야의 개혁은 당연히 뒷전으로 밀린다. 서민들에게 노후생활을 지탱할 최소한의 안전판인 연금문제만큼 절실한 게 또 있을까. 연금 스캔들로 일본 정치인들이 스타일을 구겼지만 다음 세대의 문제를 미리 고민한다는 점만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연금문제에 태평인걸 보면 한국 국회에는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자들만 모인 건가.

박 원 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