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본래 있는 것의 재현()이다. 참()을 찍는()것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는 사진결혼이라는 것도 있었다.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서 노동력을 파는 코리안 총각이 처녀를 구할 때 배편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은 거짓이 없기에, 이민 1세대 커플은 거의 사진을 매개로 맺어졌다. 예전에는 예술사진과 보도사진의 가치도 있는 그대로의 재현에 무게가 실렸다. 가공하지 않은 사실성과 기록성을 높이 평가하고 거기서 예술성과 역사성을 찾았다.
이제는 아날로그 시대가 아니다. 디지털 이미지는 누구라도 컴퓨터 조작법을 배우면 얼마든지 쉽게 바꿀 수 있다. 변조와 가공이 예외가 아니라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것이 돼 버렸다. 그래서 동사무소에서는 서류 사진과 실제 얼굴이 너무 달라 진짜 사진을 붙이라고 퇴짜 놓기 일쑤라고 한다. 신입사원 면접에서도 서류에 붙인 사진과 실제 얼굴이 너무 차이나 딴 사람을 보는 듯한 경우가 적지 않다. 참을 사칭하는 사진()의 시대가 와 버린 것인가?
인터넷에서 성행하는 패러디가 현실을 말해 준다. 한 포털 사이트에는 합성이라는 주제어로 등록된 카페가 274개에 이른다. 합성사진이 누리꾼의 문화코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것이 야당 대표의 베드신 조작으로, 남녀 의원의 누드신 날조로, 대통령에 대한 총구 겨냥 패러디로 발전해 정치적 소동을 빚기도 했다. 합성 패러디가 표현의 자유라는 선을 넘어서 초상권과 인격권 침해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여자 연예인의 얼굴을 포르노 여배우의 나체에 합성한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한 사람들이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연예인 73명의 나체 합성사진을 242회에 걸쳐 음란 사이트에 흘렸다는 것이다. 21세기 거대 조류를 예측한 20여 년 전의 책 한 권이 생각난다. 미래는 픽션 패션 필링(감각) 페머니너티(여성성)의 4F 시대가 되리라는 예언이었다. 합성사진 소동에 4F가 다 들어맞는 것만 같다. 죄와 타락을 뜻하는 폴(fall)도 곁들였더라면 더욱 완벽했을 것인가.
김 충 식 논설위원 skim@donga.com